등록 : 2005.01.13 18:08
수정 : 2005.01.13 18:08
한석규- 호흡이야 뭐, 척하면 착이죠
백윤식- 반듯하게 잘 컸지 이젠 답이 딱 나와
2월초 개봉예정인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은 10·26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백윤식(58)과 한석규(41), 두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텔레비전 드라마 <서울의 달>에 함께 출연했던 둘은 이 영화를 통해 10년만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한국 영화의 간판급 주연배우가 된 둘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극중 이름 박 부장, 백윤식)과 그를 수행했던 박선호 과장(극중 이름 주 과장, 한석규)으로 출연한다.
10년만의 재회
한석규: “<서울의 달> 때는 (백윤식이) 어려워서 개인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다. 이 영화 찍기로 하고 만났을 때 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안았다. 백 선생님은 이러셨다. ‘야, 영화에서도 우리가 또….’ 촬영 동안 연기에 대한 얘기보다 잡담을 많이 했다. 그게 중요하다. 편안함과 신뢰를 갖는 것. 백 선생님과의 호흡? 호흡이야 뭐, 척하면 착이죠.”
백윤식: “(한석규가) 많이 훌륭해졌어. 출중한 배우가 돼 있더라고. 그때는 애기 때였잖아. 남자한테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청초한 느낌이랄까, 그랬는데 10년만에 다 커서 만나니까 감개무량하지. 인간적으로도 반듯하고 젠틀맨쉽이 깃들어져 있고, 좋은 매너의 생활만 해와서인지. 석규랑 연기하면 인간적인 것, 배우적인 것 합쳐 딱 답이 나오잖아. 아주 스마트하고 정갈하게 넘어갔지.”
<그때 그사람(들)>의 출연, 왜? 어떻게?
백: “처음 책(시나리오) 받았을 때 숙고했다. 너무 가까운 역사이고. 배우 이미지에도 관계되는 문제고. 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적 오해의 소지도 있고. 반면에 책은 작품이니까. 번민을 털고 창작 활동하는 배우로서 아티스트 개념으로 임하자!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같아 스스로 이런 문장으로 정리해 놓고 마음을 다졌다. ‘그때 그일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가신 분들께 명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그일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옷깃을 여미는 마음입니다.’ 그리곤 열심히 했다. 내 소신만 잘 갖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반향이야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런 건 담담해요.”
한/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게 아니라 배경이나 사정을 담았을뿐
백/ 내 나름대로 알고 있었던 김재규는 접근시키지 않았다.그냥 담백하게 진솔하게…
한: “출연이 꺼려지지 않았냐고?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 이걸 영화로 할 수가 있구나. 그래서 기뻤다. 사실 언젠가는 영화화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 또 이 영화가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평을 내리는 영화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 배경이랄까, 사정들을 담는다고 할까. 언짢고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가 없는 영화니까 이해해 주셨으면 싶다.”
중앙정보부의 두 남자
백: “사건 당시 내가 30대 초반이었고 실제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해 나 나름대로 알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건 접근시키지 않았다. 이건 책(시나리오)이다. 책에 의존해서 보니까 내가 어떻게 가야겠구나가 나왔다. 캐릭터 형성이 됐다. 그럼 그걸 어떻게 연기할까. 그때 내 노트는 이랬다. ‘담백하고, 진솔하고, 담담한.’… 그런데 책 속에서 그려지는 이 사건이 참 답이 안 나와요. 어마어마한 행동을 해놓고 용두사미도 아니고 오리무중으로 가니까. 난센스적인 세상이지.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는 자괴감 같은 걸 담는 거지.”
한: “연기 시작할 때 주 과장을, 늘 껌을 씹고 머리엔 새치가 많은 인물로 연기하면 어떻겠냐고 임 감독에게 물었다. 답은 이랬다. ‘막 해 주세요, 대신에 잘 해 주세요.’ 별 제재 없이 즉흥대사를 많이 했고, 내 촬영분의 절 반 정도가 테이크 한번에 오케이 사인이 났다. 그렇다고 코미디로 접근하진 않았고, 다만 연기의 톤을 높였달까. 실제 인물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재판 기록을 보니까 그가 1년 동안 쉰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그 사람 심정이 어떨까.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하고, 끝은 안 보이고. 불평 많고 남을 믿지 않는 이 인물의 행동 속에 그런 심경을 담아 전하려고 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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