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영화 ‘도쿄’
역시 봉준호!
레오 까락스, 미셸 공드리 등 세계적 감독들과 3분의 1씩을 나눠 맡은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서 봉준호 감독의 재기는 단연 빛난다. 봉 감독은 지난 15일 시사회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학창시절 우상처럼 여겼던 레오 까락스, 좋아하는 선배인 미셸 공드리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초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는 지나친 겸양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지진이라는 일본 특유의 현상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주어진 상황의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예리함이 돋보인다. 한 미치광이(드니 라방)가 도쿄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까락스의 <광인>, 소외감을 느낀 여자가 의자로 변한다는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도 나쁘지 않지만, 봉준호의 탁월한 설정을 따라가기 어렵다.
<흔들리는 도쿄>의 주인공 히키코모리(가가와 데루유키)는 11년째 집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싫어 집안에 틀어박힌 채 모든 걸 해결한다. 그의 집 안은, 토요일마다 시켜먹는 피자 상자와 휴지 등이 오와 열을 맞춰 빼곡히 정열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이 발생하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히키코모리의 원칙이 깨지게 된다. 피자 배달원(아오이 유우)의 눈을 보게 된 그는 감전이라도 된 듯 사랑에 빠지고, 가게를 그만둔 피자 배달원을 만나려고 11년만의 외출을 감행한다.
아오이 유우의 팔뚝에 새겨진 버튼 문신, 손바닥에 난 휴지심 자국 등 작은 사물로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봉준호표 세공법은 그의 첫 멜로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주연을 맡은 가가와 데루유키는 봉 감독에 대해 “50m짜리 거대한 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 같다”며 “그러나 크레인 끝에는 현미경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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