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세대 “우리는 섬이었다” 독일영화 <에쥬케이터>는 90년대 초반 ‘X세대’라는 단어를 전세계적으로 유행시켰던 20대 초중반의 신세대가 30대가 된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시 쓰는 세대론이다. 70년생인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정치적 행동가이고자 했으나 단 한번도 그렇지 못했던 내 인생의 지나간 10년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현실에 분노하고 변화를 열망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그린다. 이들은 체 게바라의 초상이 티셔츠에 인쇄돼 유행상품으로 팔리는 현실을 개탄하지만 자신들이 말끝마다 주워넘기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운명이 게바라의 초상과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얀(다니엘 브륄)과 피터(스티페 에르켁)는 일종의 ‘자생적 혁명가’다. 길거리에서 둘은 부잣집에 무단침입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자신들만의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당신들은 너무 많이 가졌다’ ‘풍요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떠나는 이들에게 언론은 ‘교육자’(에쥬케이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들의 난장판 ‘퍼포먼스’는 투쟁이면서 놀이다. 투쟁을 놀이로 여길 수 있는 건 비장하게 혁명을 꿈꾸었던 전 세대와 이들 세대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다. 문제는 이 ‘놀이’가 이들에게는 혁명의 전초전이지만 남들에게는 그야말로 귀엽고 발칙한 ‘놀이’로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X세대의 ‘혁명가’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고립된 섬들이다. 부잣집 무단침입 ‘게릴라’ 들
68세대 집주인을 납치하다
철부지의 좌충우돌 혁명놀이 피터가 잠시 여행을 간 사이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아 옌치)은 두 남자의 비밀 활동을 알게 된다. 얼마 전 고물차로 벤츠를 들이받아 10년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을 보상금으로 차압당할 처지에 놓인 율은 벤츠 주인의 집을 무단침입하자고 얀을 부추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주인과 부딪히며 상황은 꼬인다. 피터를 불러 집주인을 납치한 세 사람은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 이 상황에서 얀과 율 사이에 싹튼 사랑은 우정과 ‘혁명전선’을 뒤흔들어 놓고, 자신이 68운동의 지도부 출신임을 고백한 주인에게 주인공들은 얼치기같은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
||||
주인공들은 대책없이 사고를 치다가 납치범이 되고 또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 꼬이는 연애에 더 신경을 쓴다. 행동은 과격하지만 속은 한없이 무른 이들 현직 혁명가들과 달리 “젊은 시절 자유를 갈구하지 않으면 가슴이 없고, 나이들어서도 자유를 갈구하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전직 혁명가는 훨씬 단단하다. <에쥬케이터>는 자신의 세대가 처한 딜레마를 비교적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딜레마는 변화를 꿈꾸지만 논리도 전략도, 서로간의 이해도 부족한 등장인물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예산의 디지털 방식으로 완성한 이 영화는 인공 조명을 피하고 젊은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지만 음악을 쓰는 방식이나 마지막에 세 인물이 떠나는 모습 등에서 관습적인 ‘폼’을 벗어버리지 못한다. 머리는 저 멀리 다른 세상에 있지만 몸은 이 추잡한 세상이 제공하는 한 숟가락의 달콤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한계를 영화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6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