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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5 18:31 수정 : 2005.05.05 18:31

어린이는, 천사인가? 때 묻지 않은 영혼이며 순진무구의 표상? 이 세상 더러움에 행여 물들까 어린 자녀 양육에 노심초사 올인하는 전국의 부모님들, 기억 한번 더듬어보시라. 먼 옛날 얘기도 아니다. 기껏해야 20~30년 전, 당신은 어떤 어린이였는가? 때 묻지 않은 영혼? 순진무구의 표상? 오호, 정말 그러셨는가? 물론 기억만큼 왜곡이 쉽고 빈번한 영역도 없을 테니,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옛날 그 시절의 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착했는지. 거기 비하면 요즘 애들이 되바라지고 발랑 까지긴 했어. 다 삭막하게 변해버린 세상 탓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맑고 순수하지.” 아, 예.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본인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셨나 보다. 참고로,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내 모교는, 일명 콩나물시루 교실에 3학년까지 2부제 수업을 실시하던, 1980년대 당시 기준에서 몹시 평범한 공립학교였다.

그 시절 우리는 다 친구였다고? 아이들 몇 명이 모이면 자연스레 패가 갈리던 것, 잊으셨나 보다. ‘왕따’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해서 모두의 은근한 따돌림의 대상이던 아이도 없었던 건 아니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나름대로의 권력욕과 배신, 음모와 질투도 분명히 실재했다. 몸이 작아도, 어린이는 들끓는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다. 우리는, 어른들은, 그걸 자꾸만 까먹는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던 어린이들은 순백색의 내면세계를 지닌 거의 완벽하게 무욕적인 존재로 묘사되곤 했다.

<파송송 계란탁>의 아홉살 소년 인권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래서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아니, 아름다운 동심에 관한 한 무균청정지대인 줄만 알았던 가족영화 속에, 저렇게 싸가지 없는 ‘애새끼’도 있단 말이지? 녀석은 마치 꼬마악마 같았다.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반말 틱틱, 다짜고짜 아빠라고 부르며 유들유들하게 눌러 붙는 자태가 가히 예술이었다. 불법음반제조업계에서 일하는 아빠에게 “내가 원하는 거 안 해주면, 아빠 하는 일 확 신고해버린다”고 할 때는, 인권이가 <순풍산부인과> 미달이의 초특급 카리스마를 압도하는 새로운 아동영웅으로 우뚝 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린이 캐릭터들을 현실과 달리 무조건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이 ‘위선’이라면, 인권은 ‘위악’의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원래는 착하고 순수한 어린이지만, 일부러 싸가지 없음을 가장했던 것이다. 왜? 세상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쓴 ‘아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어른들로 하여금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 그래서 그는 제 한 몸 장렬히 희생해 죽어가야 하는 거다. 제 과거를 망각한, 어른들의 ‘맑은 동심 콤플렉스’는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지. 죽어가면서도 국토종단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권이의 인권을 보호하라!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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