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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야만의 시대…‘행동하는 스승’을 위하여

등록 2008-12-24 18:34수정 2008-12-24 19:01

루이 말 감독 ‘굿바이 칠드런’
나치 치하 프랑스, 유대인 친구 숨긴 학교에 닥친 비극
게슈타포에 끌려가는 교장 향해 아이들 “다시 만나요”
감독 자전적 체험…87년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

“40여 년이 흘렀지만 그 1월의 아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의 마지막 장면. 50대 원숙기에 접어든 감독의 내레이션이 진눈깨비 내리는 학교 마당을 배경으로 흐른다. 때는 1944년 1월. 32년생인 루이 말 감독은 ‘그날 아침’ 열두 살이었고, 그날의 기억은 그의 평생의 트라우마였다.

열두 살의 줄리앙(가스파르 마네스)은 새 학기를 맞아 엄마와 헤어져 가톨릭 계열의 기숙학교로 돌아온다. 프랑스의 부유한 중산층에 속한 줄리앙은 문학과 수학에 소질이 있는 영민한 소년이다.

프랑스인들에게 1944년은 치욕과 영광이 점철된 해였다. 눈 내리는 새해 벽두에도 나치 독일의 힘은 여전히 강성했고, 전세를 뒤바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은 그해 6월이 되어서야 단행됐다. 1940년 6월 항복 이후 프랑스인들은 게슈타포(독일 비밀경찰)의 위세에 눌려 치욕을 곱씹어야 했다.

그 무렵 줄리앙의 학교로 우울한 표정의 소년 보네가 전학 온다. 보네는 수학과 문학에 소질이 있고 피아노도 잘 치는 모범생. 줄리앙과 보네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다 길을 잃는다. 단짝 친구가 된 둘은 사람들이 방공호로 대피한 사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킥킥대거나, 밤새 <아라비안 나이트>의 야한 부분을 골라 읽다 잠이 든다.

어느 날 줄리앙은 밤에 촛불을 켜고 예식을 진행하는 보네를 보고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보네의 본명은 장 키플스타인. 강직한 교장 신부의 도움으로 학교로 숨어들었다. 얼떨떨해 하는 소년의 표정 너머로 가슴에 별을 달고, 경찰의 요구에 항상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며, 오랜 단골이던 고급 식당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굿바이 칠드런>은 루이 말 감독의 자전적 체험으로 넘쳐 난다. 감독의 학교에도 영화처럼 부모를 초청해 아이들에게 외출 기회를 주는 시간이 있었고, 행사가 끝나면 같이 모여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속에는 채플린 주연의 무성영화 <이민선>(1917)이 등장하는데, 나치를 비판한 채플린 작품은 당시 유럽에서 상영금지였다고 한다.

마침내 모든 비밀이 드러나던 날, 학교는 게슈타포의 급습을 받는다. 진눈깨비 내리던 그날 아침 게슈타포는 강직한 신부와 세 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체포한 뒤 학생들을 마당에 불러 모아 “프랑스인들은 규율이 없다”며 일장연설을 늘어 놓는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신부를 향해 아이들은 “다시 뵈요, 신부님!”이라고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오래 감춰둔 일기를 꺼내 읽는 듯한 감독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 영화는 8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88년 <타임>의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부와 보네는 그해 여름을 기다리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수용소에서 숨졌다고 전해진다. 영화사 백두대간이 준비한 루이 말 특별전의 세 번째 작품. 24일 개봉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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