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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2 16:34 수정 : 2005.05.12 16:34

지난 9~12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세계 60여개국 175개 문화단체 대표들이 모여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제4차 총회를 열었다. 제3차 유네스코 정부간 회의에 부쳐질 두 가지 종류의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안’(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한 문화전문가단체들의 입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총회 첫날 회의장인 마드리드 크라운 호텔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흐르보야 흐르바르 크로아티아 영화감독협회 대표가 양기환 세계문화기구를위한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등 한국 대표단을 향해 왼쪽 손목을 열렬히 흔들어 보인 것이다. 흐르보야의 손목에는 ‘노무현’이라는 한글이 선명한 일명 ‘노무현 시계’가 반짝이고 있었다. 몇몇 다른 해외 문화전문가들도 한국 대표단에게 같은 시계를 내보이며 각별한 환영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제3차 총회 당시, 노 대통령이 세계 57개국 230여명의 문화전문가들을 영빈관 만찬에 초청해 선물한 시계였다. 흐르보야는 “서울 총회 뒤 ‘노무현 시계’는 문화다양성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며 “문화다양성 보호정책에 대한 국제문화전문가단체들의 공감대를 확인하고, 스크린쿼터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 정부의 문화다양성 보호 정책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시계를 마드리드까지 차고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접한 한국 대표단들의 표정은 씁쓸했다. 해외 문화전문가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스크린쿼터 등 문화다양성에 관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지난해 한국을 찾은 국제문화전문가단체 대표들의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스크린쿼터 축소 가능성을 내비쳤고, 이 말은 이창동 당시 문화부 장관의 조건부 스크린쿼터 축소 발언으로 이어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경제관료들이 이따금씩 스크린쿼터 축소 필요성을 주장하는 상태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잠시 잠복해 있는 상태일 따름이다.

노무현 정부는 또 제3차 유네스코 정부간 회의를 20여일 남겨둔 현재까지도, 스크린쿼터 같은 자국 문화상품 보호조처를 국제협약으로 보장하는 문화다양성 협약안에 법적 강제력을 둘지 말지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양 집행위원장은 “문화다양성 협약이 세계무역기구협약 등 다른 국제협약에 맞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이 협약의 효력을 다른 국제협약보다 우위에 놓는 조항이 필수”라며 “유럽연합과 중국, 인도 등 상당수 회원국이 문화다양성 협약안에 실질적인 강제력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눈치만 살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심상치 않은 한국의 상황을 경청하던 흐르보야는 “만일 한국 정부가 법적 강제성을 가진 문화다양성 협약에 반대하고 자국에서도 문화다양성 보호에 반하는 정책을 수립한다면, 다른 문화전문가들과 함께 ‘노무현 시계’를 한국으로 되돌려보낼 것”이라며 자랑스레 차고 있던 시계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드리드/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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