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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극장전’ 만든 홍상수 감독

등록 2005-05-25 17:06수정 2005-05-25 17:06



“행복 이미지 만들어 판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극장전>(27일 개봉)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6편을 통틀어 가장 보기 편하다. 아니, 편하다기보다 불편하지가 않다. 인물들이 치졸한 행동, 이기적인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 어딘가 멍청하고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게 되레 귀엽다. 이야기도 시간 순서를 따라 쉽게 흘러간다. 남자가 여자를 쫓아가서 같이 자고 헤어지는 이야기(이건 <생활의 발견> 이후 되풀이돼온 것이기도 하다)에, 어떨 땐 적확하고 어떨 땐 엉뚱하기 그지없는 대사와 행동이 곁들여지는 모습이 많이 웃긴다. 주인공이 긍정적 다짐을 하며 끝나는 이 영화는, 밤거리에 초라하게 혼자 남게 되는 최근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보다 밝아 보인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하나하나 부정하고 나면, 언뜻 생각해서 폐쇄, 허무, 비관적이 돼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건 아니다. 왜 헛소리를 지껄이냐, 치워라. 그것만 요구해온 거다. 그런 사람에게도 삶에 대한 긍정이 진짜 있다.” 홍상수 감독이 전부터 해왔던 말에 따르면 ‘집어치워야 할 헛소리’는 “그렇게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행복의 이미지를 만들어 파는” 일이다. 가공된 행복의 이미지에 주눅들지 않는다면 “삶을 더 만끽”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그의 제언인 셈이다. “전에는 ‘치워라’고 하는 걸 많이 보여줬지만 그 밑바닥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인물을 만들고 해석하는 내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같다.”

“어떻게 보느냐는건 보는 사람들의 몫
그들의 느낌이 반복돼온 감정이 아니길”

그의 말대로 홍상수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극장전>은 어려워진다. <극장전>은 ‘무엇’에 관한 영화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무엇’에 해당하는 말을 <오! 수정>에선 ‘기억’, <생활의 발견>에선 ‘모방’이라고 홍 감독 스스로 제시했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에선 “집어치워”라고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가 ‘무엇’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극장전>에서 “집어치워”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진다. 아울러 ‘기억’이나 ‘모방’, ‘반복’ 등의 모티브에 더해 영화 속과 영화 밖의 대조, 나이듦과 죽음이라는 변수까지 끼어드는데 어느 하나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인물들의 행동은 우습고 귀엽기조차 하지만, 그 동인을 찾아나서 보면 여러 요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긴장감으로 가득찬 불안한 균형이다.

목표는 ‘반복돼온 감정’을 피하기=“장면과 장면이 부딪힐 때 관객들의 어떤 정서를 유발하겠지만 내가 그걸 미리 잰다면 내 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같다. 어떻게 보느냐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다. 열중 아홉은 이렇게 느끼겠지 하고 찍는다면 상투적인 표현이 될 거다. 나는 보는 사람들이 받는 느낌이 우리에게 반복돼온 감정이 아닌 다른 것이길 바란다. 그게 목표다.” ‘반복돼온 감정’을 기피하는 창작 태도는 ‘정형화된 행복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그의 세계관에 부합한다. 그의 전작들도 그랬지만 <극장전>은 더욱 더 관객들에게 능동적인 영화보기를 요구한다. 그점에서 가장 홍상수다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만들었지만 혼자 노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혼자 굴러다니다가 이 사람한테 이거 주고, 저 사람한테 저거 주고….”

정형성에 대한 홍 감독의 거부감은, 들고 찍기와 현장 사운드만을 고집하는 ‘도그마’ 집단처럼 영화의 “일루저니스틱한(환영적인) 순결성, 객관성”을 추구하는 태도에도 적용된다. 그는 <극장전>에서 처음으로 줌을 사용하고, 내레이션을 집어넣으며, 영화 속 인물이 듣는 음악을 그대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확대시키는 등 인위적이라고 여겨질 법한 방식을 과감히 사용했다. “어차피 객관적이지 않은 거 다 알고 있지 않나. 일루저니스틱한 객관적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드는 건 <강원도의 힘> 때 해봤고.… 사실적인 내용과 그걸 잡는 카메라의 인위적인 움직임 사이의 충돌이 개인적으로 재밌었다.”


순제작비 8억5천만원, 손익분기점 24만명=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때문에 칸에 갔다가 파리에 들렀을 때 홍 감독은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 얼마 전부터 영화 만드는 일에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파리에서 문득 내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보여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영화도 만들어져야 한다는.” 그리고 귀국해서 ‘전원사’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직접 제작까지 맡은 첫 결과물이 <극장전>이다. “계속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비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극장전>은 순제작비 8억5천만으로 찍었다. 계산해보니까 손익분기점이 24만명 정도다. 그만큼 안 들면 제작비를 더 낮추고. 디지털로 찍을 수도 있고. 지금은 디지털 화면의 느낌이 친숙하지 않지만 찍어보면 나름의 장점이 찾아지지 않을까.”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극장에 관한, 극장 앞에서 벌어지는 ‘두 갈래’ 이야기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극장전>은 극장에 관한 이야기(傳)이자, 극장 앞(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두가지 뜻을 지닌다. 또한 <극장전>은 두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앞의 반은 영화 속 영화이고 뒷부분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인물의 하루를 그린다. 첫번째 이야기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나온 고등학생 상원(이기우)가 중학교 동창 영실(엄지원)을 우연히 만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비춘다. 두번째 이야기는 간암을 앓고 있는 대학 선배 감독 회고전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동수(김상경)은 극장 앞에서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하루의 시간이다.

<극장전>은 지금까지 나온 홍상수 영화들의 레퍼런스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를 리얼리티가 아닌 구조의 영화라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던 관객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극장전>은 풀어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두 개의 이야기가 정확히 독립된 ‘대칭’ 구조를 이루며 동수는 영화 속 인물인 상원의 행동을 ‘모방’한다. 이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위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크게 보면 이야기의 패턴이 ‘반복’된다. 상원과 영실은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며 섹스를 하고 그 패턴을 영화 밖 인물인 동수와 여배우 영실이 반복한다. 비단 <극장전>이라는 영화 안에서 뿐 아니라 동수는 직업도 이름도 비슷한 <생활의 발견>의 경수를 닮았고, 영실의 어떤 대사는 <오! 수정>에서 수정을 연상시킨다.

<극장전>이 구조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다른 이유는 인물들이 전작들보다 정서적인 불협화음을 덜 만들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의 말대로 <극장전> 속 인물들은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상적인 인간의 행위’에 못미치는 행동들을 하지만 이를테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문호의 행동처럼 그것이 찜찜하거나 뜨끔한 느낌을 전하는 정도는 아니다. 동수도 피곤하고 복잡한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거리에 홀로 남지만 문호처럼 참혹하거나 씁쓸한 모습은 아니다. 여기에는 캐릭터 자체가 조금 부드러워진 탓도 있겠지만 관객이 ‘홍상수적 인물’에 익숙해진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캐릭터의 ‘덜 불편함’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줌’기법, 훨씬 더 ‘인물밀착형’이 된 음악의 사용 등이 확실히 전작들에 비해 <극장전>을 보기 편한 영화로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 앞’에 나오기까지 동수의 행동-화장실에 가고 극장의 계단을 내려오는 따위-을 따라하게 되는 관객은 일상적 행동이 영화 안에 포획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면서 영화와 현실의 뒤섞임에 대한 혼란에 갇히게 된다. <극장전>은 상대적으로 친절한 디테일과 체계적인 플롯으로 관객을 전작들보다 적극적으로 영화 안에 끌어들이면서도 출구를 보여주지는 않는 여전히 까다로운 영화다. <극장전>은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제작사 전원사를 차려 직접 제작에 나선 첫 작품이다. 27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시네와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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