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2>
3000억원 쏟아부어 만든 ‘현대판 노아의 방주’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마야인들이 사용하던 달력은 2012년 12월21일로 끝난다. 경제 불황, 기상 이변 등의 길흉을 예측하는 웹봇이라는 프로그램도 2012년부터 분석을 거부한다. 2012년 지구 멸망설은 이 밖의 몇 가지 가설에 기대고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등의 재난 영화로 유명한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2012>는 이 가설들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지구의 핵이 뜨겁게 달궈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땅이 마른 빵처럼 쩍쩍 갈라지고, 항공모함이 백악관을 덮치며,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화산 폭발로 사라진다. 이 모든 재난의 끝에 에베레스트를 위시한 히말라야 준봉들이 물에 잠기는 광활한 피날레가 기다리고 있다.
<2012>의 고위층은 예고된 재난에 발 빠르게 대처한다. 비밀리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건설하는 것이다. 지극히 제한된 탑승권이 돈과 권력에 의해 분배된다는 상상이나, 미국·일본 등 ‘지(G)8’ 국가 정상들만이 대피 계획을 위한 논의에 참여한다는 점도 기분 나쁘지만 그럴싸하다. 방주가 만들어지는 곳이 ‘세계의 공장’ 중국이라는 사실도 설득력 있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주인공인 소설가 잭슨 커티스(존 큐잭)가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거액을 주고 탑승권을 산 사람들조차 방주에 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들이 전부 살아남아봤자 생존율은 전체 인류의 0.000001%도 안 된다.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데 고무된 한국 영화계가 스펙터클로 할리우드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지금, 이 거대한 영화의 출현은 새로운 숙제를 던진다. <2012>의 순 제작비는 <해운대> 같은 영화 20편을 만들고도 남을 2억6000만달러(약 3120억원)다. 볼거리나 스케일도 <해운대>의 10배는 될 것 같다. 12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소니 픽쳐스 제공
영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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