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상승 꿈꾸다 좌절한 이야기
‘인생역전’ 요즘과 남다르지 않다 이 여자에게선 기품이나 고결함 같은 게 배어나오지 않는다. 강한 생활력과 생존 본능도 억척스러움에 가깝게 다가올 뿐 스칼렛 오하라 같은 강인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뿜어내는 상류사회 파티장의 구성원들 앞에서, 누군가 노래를 청하자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뻔뻔해 보이기도 한다. 비겁하지는 않지만 자존심을 앞세우기에는 너무 가진 게 없는 약자임을 감추지 않는 베키의 캐릭터는 관객의 섣부른 감정 이입을 견제하면서 영화를 통속극에서 구해낸다. 이런 연출로 인해 개인 드라마의 서사성이 줄어들지만 대신 이 캐릭터와 주변 인물의 동시대성은 커진다. 교양을 절대가치로 떠받드는 당시 상류사회 사교계는 최소한 교양 앞에선 개방적일 것 같다. 베키의 무기도 바로 그 교양이었지만 교양이라는 티켓만으로는 그 사회에 올라탈 수가 없다. 진보적인 귀족 크롤리 할머니는 베키를 상류사회로 진입시켜줄 것 같다가도, 베키가 자기의 젊은 조카와 결혼하려 하자 “현실에서 진보란 없어”라며 베키를 쫓아내 버린다. 품격 넘치는 스타인 백작이 베키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데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상류사회의 허영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이 둘이 더 완고한 배타성을 드러낼 때, 메그 윈 오언과 가브리엘 번이라는 두 노배우의 연기력까지 보태져 영화는 신랄한 풍자극의 정점을 선보인다. 그 사회가 숨막혀 보이고, 숨막혀 보이는 순간 지금 시대와도 남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베키 외에, 베키의 친구 아멜리아와 그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워털루 전쟁까지 담아내는 〈베니티 페어〉는 많이 보아온 시대극의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생각보다 과격한 영화다. 21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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