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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7:13 수정 : 2005.01.17 17:13

여인의 욕망 누가 탓할쏘냐

〈베니티 페어〉는 신분과 재산이 절대 가치이던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던 한 여자의 성취와 좌절의 이야기다. 번역하면 ‘허영의 시장’쯤 될 이 작품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원작 소설로, 여러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주인공 여자의 캐릭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모티브가 됐다고도 한다. 할리우드가 인도 출신의 여자 감독 미라 네어를 데려와 만든 〈베니티 페어〉는 우선 주인공 여자의 캐릭터 연출이 남달라 보인다.

베키(리즈 위더스푼)는 무명 화가와 오페라 가수 사이에서 태어난, 세칭 천출이다. 예술적 재능과 어학 능력이 뛰어나 이집 저집 옮겨다니며 크면서도 상류사회 사교계에서 요구하는 교양을 닦았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에의 열정 같은 게 보이질 않는다.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목표의식이 분명한 베키는 상대편 남자가 큰 매력이 없어도, 또는 겉만 번지르르한 속물임이 간파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재력있는 남자를 낚아채려다가 그 남자의 주변에서 자신의 낮은 신분을 문제삼는 바람에 좌절된 베키에게 낭만은 사라지고 목표의식은 더욱 분명해진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무렵
신분상승 꿈꾸다 좌절한 이야기
‘인생역전’ 요즘과 남다르지 않다

이 여자에게선 기품이나 고결함 같은 게 배어나오지 않는다. 강한 생활력과 생존 본능도 억척스러움에 가깝게 다가올 뿐 스칼렛 오하라 같은 강인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뿜어내는 상류사회 파티장의 구성원들 앞에서, 누군가 노래를 청하자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뻔뻔해 보이기도 한다. 비겁하지는 않지만 자존심을 앞세우기에는 너무 가진 게 없는 약자임을 감추지 않는 베키의 캐릭터는 관객의 섣부른 감정 이입을 견제하면서 영화를 통속극에서 구해낸다. 이런 연출로 인해 개인 드라마의 서사성이 줄어들지만 대신 이 캐릭터와 주변 인물의 동시대성은 커진다.

교양을 절대가치로 떠받드는 당시 상류사회 사교계는 최소한 교양 앞에선 개방적일 것 같다. 베키의 무기도 바로 그 교양이었지만 교양이라는 티켓만으로는 그 사회에 올라탈 수가 없다. 진보적인 귀족 크롤리 할머니는 베키를 상류사회로 진입시켜줄 것 같다가도, 베키가 자기의 젊은 조카와 결혼하려 하자 “현실에서 진보란 없어”라며 베키를 쫓아내 버린다. 품격 넘치는 스타인 백작이 베키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데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상류사회의 허영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이 둘이 더 완고한 배타성을 드러낼 때, 메그 윈 오언과 가브리엘 번이라는 두 노배우의 연기력까지 보태져 영화는 신랄한 풍자극의 정점을 선보인다. 그 사회가 숨막혀 보이고, 숨막혀 보이는 순간 지금 시대와도 남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베키 외에, 베키의 친구 아멜리아와 그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워털루 전쟁까지 담아내는 〈베니티 페어〉는 많이 보아온 시대극의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생각보다 과격한 영화다. 21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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