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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교생과 연애하는 선생님 ‘교사≠학교’ 개인독립만세다

등록 2005-06-08 16:15수정 2005-06-08 16:15

최근 <연애술사>나 <연애의 목적>같은 학교 선생님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사실-매우 사적인-을 문득 깨달았다. 대학을 제외하고 12년동안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초등학교 1,2학년 담임 선생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과 망각의 속도를 따져보면 분명 고등학교 때 선생님 이름을 기억해야 마땅한데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다. 결국 나의 즐거운 학창시절은 초딩 2학년으로 끝이 났다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중·고등학교는 돌아가라고 하면 차라리 팔순 노인이 되겠다고 외치고 싶을 만큼 재미없고 답답하고 끔찍한 공간이자 시절이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같은 그 진공의 공간에 배치된 하나의 정물처럼 떠오른다. 학교를 폐쇄적이고 몰인격적인 공간으로 기억하거나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영화에서도 반영된다. <여고괴담>시리즈를 비롯해 <분신사바>같은 주요 공포영화들의 무대가 학교라는 게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공포영화뿐 아니라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같은 사실적인 드라마에서도 학교는 황폐하고 지옥같은 곳으로 묘사돼 왔다. 그리고 그 안의 선생님은 <여고괴담> 1편에 등장하는 ‘미친 개’나 <말죽거리 잔혹사>의 교련 선생님처럼 학교를 악몽으로 만드는 기폭제로 등장하거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교사처럼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정물’로 등장했다. 학교가 몰인격적인 ‘유령의 집’이니 그 장소를 대변하는 교사 역시 몰인격적으로 묘사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연애술사>나 <연애의 목적>이 그리는 학교나 교사는 이전의 영화들이 그려왔던 방식과 매우 다르다. 이전에 학교를 무대로 했던 영화들과 다른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두 영화는 교사=학교라는 암묵적인 등식에서 벗어난다. <연애술사>의 여교사는 여관 몰카의 주인공이 되고, <연애의 목적>에서 남자 교사와 여자 교생은 학교 벤치에 앉아 연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관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실랑이를 벌인다. 또 <연애의 목적>에서 교사는 학교가 얼마나 지리멸렬한 곳인지 털어놓고, 교생은 “안정적이고 편해서” 교사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그리는 학교가 앞의 영화들처럼 지옥은 아니지만 비유가 아니라 직설로 지금의 학교나 교사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 더 과격하게 보인다.

이걸 바람직하다고 추켜세우거나 교사의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하는 건 ‘오버’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즐겁기도 하다. 상아탑이든 유령의 집이든 어떤 ‘성’으로만 존재했던 학교가 일상의 공간으로 내려오고 교사가 학교의 대변인이 아닌 개인으로 묘사되는 것 자체가 공간과 캐릭터 묘사의 ‘민주화’라고 본다면 이것도 ‘오버’일까.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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