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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 별뜻없이 엄청 무섭다

등록 2005-06-08 16:18수정 2005-06-08 16:18



베트남전 조롱한 원작과 달리
재미극대화시킨 공포오락물

밴을 타고 한적한 텍사스 길 위를 달리고 있던 다섯명의 젊은 남녀가 넋을 잃은 채 걷고 있는 한 여자를 태워준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자동차가 ‘트래비스 카운티’에 멈춰서려 하자, 권총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당황한 일행은 여자의 시신을 처리하려고 황량한 마을로 들어서고, 적대적이고 기괴한 느낌의 주유소 여주인과 보안관, 휠체어를 탄 영감, 그리고 남자아이가 외지인들을 맞는다. 일행은 마을 사람들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자신이 죽인 사람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 쓴 ‘레더페이스’ 살인마가 전기톱을 들고 또 다른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저택으로 인도된다.

지난 2003년 미국에서 개봉했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이 23일 한국 관객을 찾는다. 이미 알려진대로 토브 후퍼 감독이 만든 전설적인 호러 영화 <텍사스 살인마>(원제:<텍사스 전기톱 대학살>)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아마겟돈>를 연출했던 할리우드의 흥행사 마이클 베이가 광고감독 출신의 마커스 니스펠을 연출자로 내세워 제작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1973년 텍사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또 여행중이던 다섯명의 젊은이가 전기톱을 휘두르는 레더페이스의 제물로 바쳐지고 이 가운데 한 여성만 살아남는다는 설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 개봉 당시, 걸작을 리메이크한 대부분의 영화들처럼 ‘원작보다 못하다’는 불명예를 얻었다.



원작 <텍사스 살인마>는 수많은 정치·사회적 상징을 드러내는 영화였다. 원작이 만들어진 74년은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반전문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더페이스를 한 채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살인마는 피해자를 가장하며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공포스럽지만 우스꽝스럽기도 한 캐릭터 구성과 상황 설정들은 베트남전을 이끈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다. 더욱이 전기톱 살인이라는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살인장면에 대한 실질적인 묘사 없이 편집과 음악 등 비폭력적인 장치들만으로 살인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극대화했다는 점도 이 영화를 ‘반전코드’로 읽히게 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인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철저하게 재미를 위해 공포를 극대화시키면서 원작이 지닌 정치·사회적 함의들을 삭제했다. 공포영화의 공식에 맞춰, 살인장면을 더 적나라하게 등장시키고 주인공들을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몰아넣어 훨씬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뜻을 이끌어내는 것은 무리다. 이런 점은 평단의 혹평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하지만 원작과 상관없이 공포 오락 영화를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마저 외면당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특히,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보안관이 자살한 여인의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척 세명의 젊은이를 추궁하며 불길한 궁지 속으로 몰아넣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은 원작에 없던 것으로, 공포영화의 핵심인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함정에 빠진 듯한 느낌’을 ‘관객들이 미치고 펄쩍 뛸’ 정도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래핑보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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