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와 광주국제영화제 이사회의 갈등으로 정재형 수석 프로그래머와 박흥석 조직위원장이 지난달 말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파행을 빚었던 광주국제영화제가(<한겨레> 3일치 23면)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예정대로 열리게 됐다. 광주국제영화제 이사회와 광주광역시는 지난 8일 정환담 이사장 등 임기가 만료된 임원들의 임기를 영화제 폐막 뒤까지 연장키로 하고 영화제 개최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정재형 전 프로그래머가 “광주영화제를 졸속으로 열면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편집자
광주국제영화제가 연기돼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로그래밍의 80%를 다 해놨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그 프로그래밍은 이미 사직서를 낸 본인을 포함한 두 명의 프로그램 팀원이 3개월에 걸쳐 70% 가량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는 그 가운데 겨우 30% 정도를 책임졌었는데, 그들이 직접 보지도 않은 영화들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프로그램 차질은 영화제의 결정적 파행이다. 집행위원장은 마치 그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거짓말하면서 영화제를 대충 때우고 있다. 현재 상태로 영화제를 개최할 경우 올 영화제 프로그래밍은 아마 엄청난 졸속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번째, 시장과 시의 원칙없는 예산 집행이 문제다. 시장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정관상의 문제를 들어 이사장의 임기가 끝난다는, 즉 주체가 없는 조직에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일관하여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원칙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면서 현재의 조직을 인정하는 식의 처사를 하고 있다. 시는 예산집행에 대한 원칙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있다.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과연 시가 행사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부분은 시 의회와 시민단체가 엄중히 문책해야 할 것이다. 결국 영화제가 지금까지 파행한 것은 예산을 쥐고 있던 시가 그 집행을 미뤄왔기 때문인데, 지금 영화제를 코 앞에 두고서 일말의 사과도 없이 예산을 집행하면서 졸속으로 영화제를 치르려고 한다.
전주, 부산 영화제는 4개월전에 정상적으로 마지막 준비를 시작한다. 예산을 집행하면서 필름 운송 절차를 밟고 게스트를 초청하고 극장 섭외, 번역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광주는 그나마 1개월이나 양보해서 그 시점을 3개월 전으로 잡았었다. 그것조차 늦어져 이제 남은 기간은 2개월 반으로 줄어들었다. 전문가 입장에서 영화제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개월 반 남은 시간을 정상으로 알고 영화제를 하겠다는 광주영화제. 정말 한심하다.
이게 관객에 대한 예의인가. 과연 이런 졸속 영화제를 관객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순전히 그들만의 책임회피용 행사를 하는데 시비와 국비를 합쳐 10억원 이상을 3개월도 안되는 기간에 쏟아부으려고 한다. 광주는 그렇게 버릴 돈이 많은가. 파행의 책임이 있으면 솔직히 시인하고 다음부터 잘 할 생각을 해야지 책임회피부터 하려 한다면 그들에겐 전망이 없다. 올해의 졸속 영화제는 누구도 파행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서 억지로 하는 비겁한 영화제일 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시와 이사회, 그리고 그들의 싸움에 한데 말려들어가 결정적으로 영화제를 파행으로 몰고간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 사무국장 등 책임자 3인은 내일 당장이라도 시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영화제 연기를 선언하라. 이런 영화제를 도대체 누가 원한다고 그들은 강행하려고 하는가.
정재형/ 동국대 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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