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아카데미상 받은 ‘블라인드 사이드’
샌드라 불럭 훈훈한 연기 ‘만점’
실화 바탕…심리 디테일은 부족
샌드라 불럭 훈훈한 연기 ‘만점’
실화 바탕…심리 디테일은 부족
<블라인드 사이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두시간 남짓 과연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가벼운 긴장감 속에 영화에 몰입할수록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산더미만한 몸집의 순박하고 가련한 흑인 아이가 내로라하는 미식축구 스타로 거듭나는 출세담은 관객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만하다. 엄마는 마약쟁이에 아빠 얼굴도 몰라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마이클 오어(퀸턴 에런)의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어가는 그의 표정처럼,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추운 겨울 반소매 옷차림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거리를 헤매는 흑인 아이는, 사회의 ‘블라인드 사이드’(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빠져나와 드넓은 축구장 한복판에 우뚝 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영화의 세계가 끝나면, 평범한 관객이라도 의문을 떠올려 볼 법하다. 과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이클 오어를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끄집어내 광명세상을 만나게 해 준 이는, 주관 뚜렷하고 마음까지 따뜻한 리 앤 투오이(샌드라 불럭)이다. 반팔 차림에 찬 가을비를 맞고 있는 마이클을 데려다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주고 추수감사절 손을 맞잡고 기도하게 한다. 더 나아가 양부모가 되어주기로 마음먹고, 그의 재능까지 찾아내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내기 위해 경기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둔한 마이클의 머리를 일깨우고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가정교사를 들여 과외공부까지 시킨다. 여우주연상을 그에게 선사한 아카데미의 선택은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을 간파했다는 점에서도 옳았던 셈이다.
리 앤 혼자만의 노력으로 마이클이 거듭났다면 분명 비현실적일 터. 리 앤의 남편 숀(팀 맥그로)은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물심양면으로 아내를 돕고, 귀여운 아들 에스제이(제이 헤드)와 눈썹 짙은 미모의 딸 콜린스(릴리 콜린스) 역시 마이클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가르치고 응원한다.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에서 나왔다. 마이클 오어는 2009년 프로 미식축구 리그(NFL)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돼 5년간 계약금 1380만달러를 받은 스포츠 스타다. 그가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뒤에는 실제 리 앤 가족이 있었다. 미국 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많은 ‘블라인드 사이드’를 여러 ‘리 앤’들이 사라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화라는 점이 영화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을뿐더러, 실화이기에 영화는 도리어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가령 리 앤이 마이클을 가족으로 보듬어 안는 과정은, 아무리 마이클이 귀엽고 착하게 생긴데다 순박하고 불쌍해 보인다 해도, 마이클을 아들 삼기로 마음먹어 가는 심리 묘사가 누락된 듯한 느낌이다. 아들 에스제이야 또래 사내아이들의 호기 때문이라 해도 극히 완벽한 딸 콜린스가 왕따를 무릅쓰고 마이클에게 곁을 내주는 장면도 흐뭇할지언정 잘 와닿진 않는다.
그럼에도 뭇 남성은 아니라도 남편들의 눈길은 사로잡을 만큼 강단 있으면서도 모성애 넘치는 리 앤을 100% 이상 소화해 낸 샌드라 불럭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15일 개봉.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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