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기자
‘18금 영화’가 전성기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가 흥행 성적도 좋고 제작도 많아진다. 18금 등급은 청소년 관객이 배제되기 때문에 흥행에 걸림돌이라는 영화계 통념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통상 18금일 경우 300만 관객을 넘기기 어렵다는 게 충무로 공식이었다.
최근 발군은 <아저씨>다. 지난 4일 개봉한 이 영화는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25일 기준)로 누적 353만여명을 끌어모아, 올해 개봉한 18금 영화 중 흥행 1위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15살 관람가였던 <의형제>(546만명)에 이어 2위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500만 돌파도 가능해 <의형제>를 넘어서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에서도 <친구>(818만명), <타짜>(684만명), <추격자>(507만), <쌍화점>(377만) 등에 이어 흥행 5위에 해당한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3위인 강우석 감독의 <이끼> 역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337만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방자전>(301만명), <하녀>(228만명), <악마를 보았다>(131만명) 등의 18금 영화가 올해 들어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10위 안에 들어 있다. 올 들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10위 안에 절반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 것은, 지난 한 해 한국영화 흥행 10위 안에 든 18금 영화가 <쌍화점>(377만명), <마더>(300만명), <박쥐>(222만명) 등 3편에 불과했던 것과 견줘 확연히 대조적이다.
특히 최근 18금 영화의 특징은 섹스가 아닌 폭력과 잔혹함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미 인터넷 세계를 장악한 ‘포르노 물결’에 영화가 대항하기는 어려운 법. 피 튀기는 자극으로 영화가 승부하게 된 이유다.
18금 영화, 그중에서도 섹스가 아닌 폭력으로 승부해 통념을 깨고 성공한 작품이 2008년 만들어진 <추격자>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피 튀기는 스릴러를 완성해 냈고, 충무로 공식인 300만을 넘어 500만을 돌파했다. 여기에서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최근 18금 영화들의 탄생이 비롯됐다고 보는 게 영화계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두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거쳐 개봉 뒤에도 ‘뜨거운 감자’인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의 출현은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자발적 선택을 거쳐 향유하는 영화의 속성, 최대한 보장해야 할 표현의 자유 등을 감안한다면 제한상영관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제한상영관이 있었다면 <악마를 보았다>가 가위질을 거치지 않고 제한상영관에 걸렸거나, 상업영화인 까닭에 아예 좀더 표현이나 설정의 수위를 낮춰 제한상영가를 피해가도록 제작되지는 않았을까. 외국의 하드코어 영화는 저예산으로 영화적 형식 실험을 모색하며 제한상영관에서 상영되는 게 대부분이고, <악마를 보았다>는 상업영화지만 제한상영관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국내 평론가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사전심의나 등급보류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이라는 헌재 판정을 받은 끝에 2001년 제한상영 제도가 도입되고 제한상영관 5곳이 설립됐지만 모두 5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시장의 협소함 탓이었다. 제한상영가 영화가 거의 없으니 찾는 이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성인영화 다양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이때, 제한상영관 역시 다시 문을 열 때가 됐다. 민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선 공적기관이 표현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라도 운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씨제이씨지브이·롯데시네마·메가박스 같은 돈 잘 버는 멀티플렉스들이 이런 일을 해주길 바라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김진철 기자nowhere@hani.co.kr
김진철 기자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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