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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판타스틱 VS 부천영화제, 정체성인가 지역성인가 |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을 3주 앞둔 김홍준 운영위원장은 21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지자체의 간섭과) 지역성 고려라는 ‘한계’에 부닥쳐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했던 ‘판타스틱한 영화’들을 오히려 자유롭게 펼쳐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말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부천시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촉당하기 전까지 부천영화제에 보여온 애정을 상기하면 의외의 반응이다. 하지만 그가 수석프로그래머와 집행위원장으로 여덟 차례나 부천영화제를 개최하면서 “‘부천’ 영화제라는 지역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판타스틱’ 영화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반응처럼 느껴진다.
‘판타스틱’ 영화제의 정체성을 중시했던 김 운영위원장과 스태프들이 지자체의 간섭 없이 만든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을 들여다 보면, 그가 얘기했던 정체성의 일단이 드러난다.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는 ‘마르크스 침공!!! 동구권 SF영화 특별전’을 통해 사회주의 시대에 동유럽에서 만들어진 공상과학 영화 13편을 공개한다. 사회주의 시대 동유럽 국가에서는 주목할 만한 공상과학 영화들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고, 그 가운데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탄>에 비견되는 <아엘리타>와 같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동유럽 바깥에서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그나마 영어권 국가에 소개된 동독 감독 쿠르트 매치히의 <고요한 행성> 같은 영화는, 영어 더빙판으로 만들어지면서 완전히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작품으로 재편집되기도 했다.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는 스위스 뉴샤텔판타스틱영화제와 공동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이 영화들을 찾아내 묶고, 판권자를 수소문해 상영한다. 공상과학 영화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과거 동구권 국가의 영화들을 소개하면서, 관객들을 상상력과 표현방법이 독특한 ‘새로운 판타스틱의 세계’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부천’ 영화제의 지역성을 강조했던 부천영화제 조직위 쪽이 김 운영위원장과 스태프들을 해촉한 뒤 처음 개최하는 부천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을 들여다 보면, 조직위가 얘기하는 ‘지역성’의 면모도 드러난다.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년에 비해 유독 행사와 이벤트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부천시민 3천여명이 참가하는 ‘피판(부천영화제의 영문 약칭) 사랑 시민 걷기대회’와 화려한 공연 및 불꽃놀이가 펼쳐질 ‘7080 그린 콘서트’, 풍물놀이 같은 우리문화를 감상·체험하는 ‘피판과 함께 하는 부천 전통민속문화 한마당’ 등을 포함해 20여가지 부대행사와 이벤트가 마련될 예정이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정체성과 지역성을 두루 살리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토끼를 먼저 잡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최 쪽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관객과 영화제 관계자들의 ‘사후평가’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주최 쪽의 몫이다. 다음달 14일부터 열흘 동안 동시에 열리는 두 영화제에 대한 평가에 벌써부터 호기심이 생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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