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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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로듀서가 기획
왕자웨이·소더버그는
‘노장감독’ 존경심으로 동참
에피소드 세편에 감독들 특징 그대로 세계적인 스타 감독 세명이 ‘에로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여 만든 옴니버스 영화, <에로스>가 30일 개봉한다. 왕자웨이와 스티븐 소더버그는 각각 <그녀의 손길>과 <꿈 속의 여인>을 만들었고, 아흔 세살의 이탈리아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위험한 관계>를 내놓았다. 세편 가운데 맨 먼저 상영되는 에피소드는 세 감독 중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왕자웨이의 <그녀의 손길>. 에로틱한 촉감을 느끼게 해주는 여인의 ‘손길’로 발화된 사랑을 왕자웨이 전작들처럼 애잔하게 그려간다. 견습 재단사 장(장첸)은, 고급 콜걸 후아(공리)의 집으로 심부름을 간다. 하지만 침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흥분을 하고 만다. 주책없이 잔뜩 힘이 들어간 장의 아랫도리. 이를 눈치챈 후아는, 고압적인 자세로 숫총각 장의 바지를 벗기고 애무한다. 후아는 “이 감촉을 기억해 내 옷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이날 이후로 장은 쇄락해가는 후아의 육체와 명성을 묵묵히 지켜보며, 후아만을 위한 옷을 만들고, 후아만을 바라보는 애틋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잃고 제대로 남은 것은 그 ‘손’ 밖에 없는 후아 앞에 선 장. 장은 후아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에피소드에서, 사랑은 이뤄진다고 볼 수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2046>을 만든 뒤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고 했던 왕자웨이 감독의 말은 <그녀의 손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소더버그의 <꿈속의 여인>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알란 아킨이 신경쇠약 환자와 정신분석가로 등장하는 특이한 ‘에로스’ 영화다. 광고 회사에 다니는 닉 펜로즈는 에로틱한 꿈에 시달린다. 낯익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알몸의 여인이 매일 밤 꿈 속에 등장하는 것. 여인의 정체에 집착하던 닉은 정신분석가 펄 박사를 찾지만, 박사는 그를 침대에 눕혀 눈을 감긴 채 옆 건물 속의 누군가를 훔쳐보는 데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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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 안토니오니 감독과 <구름 저편에>를 찍었던 프로듀서 스티븐 찰 가제프가 노장 감독의 열정에 반해 기획한 영화다. 다른 두 감독도 정신적 지주였던 이 노감독에 대한 존경심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세 편의 에피소드는 안토니오니의 영화 세계를 반영하기보다는 각각의 감독 고유의 특징이 묻어나는 전형적인 옴니버스 영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스폰지EN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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