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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봄날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록 2011-04-17 19:45

남편 오현경(오른쪽)은 “아내는 하고 싶은 얘기도 딱딱 하고 당차 보여서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아내 윤소정은 “남편은 배우에 대한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환하게 웃는 부부의 표정에서 깊은 사랑과 배우로서의 동지감이 느껴진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남편 오현경(오른쪽)은 “아내는 하고 싶은 얘기도 딱딱 하고 당차 보여서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아내 윤소정은 “남편은 배우에 대한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환하게 웃는 부부의 표정에서 깊은 사랑과 배우로서의 동지감이 느껴진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연극·영화계 버팀목으로 함께 활약
“아내는 연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
“남편은 연극을 종교처럼 여기는 사람”
43년째 연기 동반자 윤소정·오현경 부부

상대는 24살 말괄량이 아가씨. 그의 집 앞에서 건넨 청혼은 딱지를 맞았다. “선생님이 싫은 게 아니라 언니도 결혼하지 않았고….”

그날 밤, 남자의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도대체 이 남자의 심경이란. ‘얼마나 슬플까’란 생각에 다음날 검정 옷을 입고 빈소에 들어선 새침데기 아가씨가 “예뻐서 (하얀)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다” 하니, 그 사랑은 이제 여인에게 옮겨붙을 수 밖에. 서울 수유리 여자의 집 앞에서 서로 등 돌리지 못해 버스 타고 남자의 마포 집 앞으로, 다시 수유리로 왔다 갔다 하던 1년 남짓 데이트. 옛 <동양방송>(TBC) 탤런트 1기 여배우는 8살 연상의 배우실장이 “밤에 헤어지기 싫은 남자”가 되자 ‘퇴짜’를 놨던 청혼을 1968년 받아들인다.

“신혼여행 사진 찍는 것 같네.”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 카페. 사진기자 앞에서 아내 윤소정(67)을 감싸안은 남편 오현경(75)이 허허 웃는다. 1994년 식도암으로 식도 7㎝를 잘라내고, 2007년 위암으로 위 절반 이상을 절개한 탓에 남편은 55㎏의 깡마른 몸이 됐다.

“식도의 종양을 제거하고 병원에서 화장실로 갔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서 혀까지 내밀고 의식을 잃었어요. 그땐 죽는 줄 알고 주저앉아서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본인이 잘 이겨냈지요.”

결혼 43년째인 이들은 동반자로서 버팀목이 돼주며 최근 영화와 연극에서 베테랑 배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윤소정이 출연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2월17일 개봉돼 관객 16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대를 아우른 관객층의 호응으로 두달째 장기상영 중이다. 노년에 다가온 사랑에 가슴 떨려하지만 그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는 ‘송이뿐’ 역을 맡은 윤소정은 상대배우 이순재와 함께 오는 24일 영화 서포터스와 촬영장소로 떠나는 봄소풍 행사까지 연다.


오현경은 17일 막내린 연극 <봄날>에서 늙은 아비 역으로 열연했다. 백발의 노배우가 공연을 끝내고 인사할 때 눈시울을 붉히며 박수쳤다는 관객이 적지 않다. 그는 84년, 2009년에 이어 <봄날>에 같은 역으로 출연해 연극계의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번에 무대에 서보니 기운이 있는 것 같아 사실극이나 심리극 한편을 더 해야겠다”며 웃었다.

연극 <봄날>
연극 <봄날>
아내는 “배우 오현경은 연극을 종교처럼, 사명감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송이뿐’에게 머리핀을 선물하는 ‘만석’ 같은 자상함을 가진 남편이라고 했다. “난 좀 덜렁이예요. 좋게 말하면 쿨한데 좀 무뚝뚝한 게 있죠. 이 양반은 너무 꼼꼼하고 정확하지만 내가 아프면 밤새 간호하는 애처가이지요. 한번은 외국 갔다가 올 때 트렁크 3개를 들고왔는데, 아들과 딸 선물은 딱 한개씩 사오고, 가방 속 나머지는 다 제 선물일 정도였으니까요.”

남편은 안다. 아파트 한두채를 살 수 있는 출연료를 주겠다고 해도 “상업 광고에 영혼을 팔 수 없다”며 거절했던 남편에게 속상했을 법한데 돈 닦달을 하지 않은 아내였다. 연극인들에게 경험을 전수하다 운영난으로 문닫은 사무실 ‘송백당’을 누구보다 다시 열어주고 싶어하는 것도 아내다. “아내가 양장점(소정옷집)도 20년이나 하고. 그동안 잘 참아줬죠.”

오현경은 학창시절 고전무용으로 콩쿠르를 휩쓸고 그림도 잘 그렸던, 영화감독(윤봉춘) 아버지와 시나리오 작가(윤삼육)인 오빠를 둬 예인의 끼를 물려받았던, 그리고 사랑을 믿고 자신에게 와준 ‘배우 윤소정’을 말하고 싶어했다.

“아내가 연극하면 첫날에 보러 가요. 연기가 어땠는지 말해주려고 이것저것 메모하는데, 한두개 쓰다가 그만 윤소정이란 배우의 연기에 빨려들어가서 더는 적지 못합니다. 그간 (성격파 역할을 한) 아내가 이번 영화에서 다른 캐릭터로 나왔는데, 난 잘할 줄 알았어요. 이 사람은 적당히 대사 외워서 하는 배우가 아니니까요.”

그런 남편을 정겹게 바라보던 자신의 표정을 윤소정은 알고 있었을까. 윤소정은 “남편이 결혼 전에 세계일주 촬영을 했었는데, 매일 우체통으로 가서 이 사람의 편지나 엽서가 왔나 기다리던 그때의 가슴 뛰던 사랑의 기억을 갖고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부가, 특히 오현경이 아내와 함께 사진 찍고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아내의 차기 연극을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저녁 공연 탓에 먼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던 오현경은 “아내가 곧 연극 <응시>(5월12~15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전무송, 이호재 등 출연)를 하는데, 이걸 잘 알려달라”고 했다. 이 얘기를 전해주자 아내 얼굴엔 ‘그 양반도 참…’이란 싫지 않은 미소가 퍼진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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