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인의 급작스런 침략
지구는 아수라장되고
무기력했던 아빠는
아이들 지키려 동분서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새 영화 <우주전쟁>(7일 개봉)은 전쟁영화라기보다 재난영화에 가깝다. 영화가 시작되면 길게 이어지는 모건 프리먼의 내레이션은 이 거대한 지구가 외계인의 시선으로 보면 물 한 방울의 소우주처럼 작고 미미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전제를 알린다. 수백만년의 진화를 거쳐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된 인류라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진화된 외계인이 봤을 때는 단세포의 미생물처럼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탄생하기 이전 이미 땅 밑에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심어놓는 수준의 기술과 전략을 가진 외계인과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그저 도망치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뉴욕의 항만노동자 레이(톰 크루즈)는 이혼한 전 부인이 여행을 하러 가면서 맡긴 두 아이를 잠시 돌보게 된다. 사춘기인 아들 로비와 어린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이 레이와 지내며 실랑이를 벌이는 잠시의 시간은 레이가 얼마나 게으르고 무기력한 인간인지, 왜 이혼을 당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영웅으로 등장하든, 악인으로 등장하든 강한 후광을 내뿜던 톰 크루즈가 별볼일없는 소시민으로 등장하는 건 외계인의 출현만큼이나 낯설고 흥미롭다. 어느날 천둥을 동반하지 않은 번개가 쏟아지더니 운석이 떨어진 듯 움푹 패인 도로 바닥에서 엄청난 물체가 돌출한다. 오징어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은 구경거리를 찾아 모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산산조각내고 이 공격은 뉴욕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난다. 대충 이쯤 되면 전세계의 재난 뉴스와 백악관에서 열리는 긴급대책회의가 차례로 화면을 채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주전쟁>은 이처럼 상투적인 수법으로 가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선은 뛰어난 지략이나 공명심은커녕 능력이라고 해봐야 자동차 정비기술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가족의 살 길만 챙기는 레이를 따라 움직인다. 군인과 탱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역할을 하는 건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의 무리를 교통정리시키는 일뿐이다. 레이는 여느 에스에프 액션영화의 영웅과 거리가 멀지만 철없는 사춘기 소년과 공포에 질린 어린 소녀, 딱 둘을 지키느라 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평범한 가장들에게 지구를 구하는 영웅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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