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나라밖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목숨을 건 통과의례일 수 있다. 비행기로 10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인 파키스탄에서 영국 런던까지 6400㎞에 이르는 육로로 여행을 하는 이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다. 이들에게 여행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고행길이자 동시에 구원을 향한 유일한 통로다. <인 디스 월드>는 결코 남들과 같을 수 없는 이들의 여행기를 담은, 좀 특별한 로드무비다.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아프간 난민촌.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부모를 잃고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번 1달러도 채 안되는 일당으로 동생들까지 책임지고 있는 12살 소년 자말에게 가난과 배고픔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도 같다. 그런 자말에게 기회가 온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사촌형 에나야트를 런던으로 보내는 길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둘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막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낯선 땅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여행 브로커들은 이들을 속여 돈을 뜯어낼 궁리만 하고, 국경지대 검문소의 군인들도 뇌물을 요구한다. 버스고 트럭 짐칸이고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타고 이란을 통과해 터키에 다다른 이들을 안내하기로 한 브로커는 둘을 인신매매단에 넘겨버린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 안 밀폐된 컨테이너 박스에 아무렇게나 갇혀 있던 일행들은 하나 둘씩 질식해 쓰러지기 시작하고 아나야트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자말은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의 밀입국에 성공하지만, 그토록 쾌활하던 그의 얼굴에선 더이상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슬람 사원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그의 미래는 이제 밝아진 걸까?
<쥬드> <월컴 투 사라예보> <원더랜드> 등을 만든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실제 아프간 난민인 자말과 아나야트를 캐스팅해 둘의 여행길을 카메라로 쫓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지만,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깨힘을 빼고 담백하게 중계하는 화면 안에 담긴 무게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자말은 이 영화를 찍은 뒤 똑같은 여행을 반복해 실제로 영국에 밀입국하지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18살이 되면 런던을 떠나야 한다’는 뒷얘기는 이 세상에(인 디스 월드) 여전히 수많은 자말과 아나야트가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8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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