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의 주인공인 파르한, 란초, 라주(앞줄 왼쪽부터)가 영화 속 뮤지컬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 이 영화를 미리 본 관객들은 “꿈을 잊고 남들이 가니까 따라가는 청춘들과 자녀를 둔 부모,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카이스트 총장 등 교육 관계자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추천하고 있다. 씨네마드마농,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인도영화 ‘세 얼간이’
명문 공대생들의 꿈 찾기
도 넘는 ‘스펙 쌓기’ 꼬집어‘
카이스트의 비극’ 연상도
일찌감치 인터넷서 호평
명문 공대생들의 꿈 찾기
도 넘는 ‘스펙 쌓기’ 꼬집어‘
카이스트의 비극’ 연상도
일찌감치 인터넷서 호평
이 영화는 국내 개봉(18일)이 열흘이나 남았다. 좀 이른 영화소개 아니냐고 여길지 모르지만, 진작부터 온라인상에 은밀히 퍼져나간 열광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기사다. 극장 시사회로 정식 공개되기도 전에 몇몇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일반인 감상평이 벌써 2만개가 넘었다. 이들 사이트의 네티즌 평점이 10점 만점에 9.4~9.5점에 이른다. 인도에서 2009년 개봉되고도 수입되지 않자,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 영상 다운로드를 통해 본 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부산과학고 입시전형 중 하나인 과학캠프에선 이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평을 내는 문제도 나왔다. 우리에게 낯선 ‘인도 영화’란 점에서 이례적인 반응들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마켓(영화 판매시장)에 이 영화가 나왔지만, 국내 수입사들이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인터넷상의 호평이 너무 뜨거웠다.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마켓에 갔더니 난리였다. 국내 수입 15개 업체가 경쟁했으니까. 온라인상의 관심이 수입사들을 움직인 영화다.”
영화를 수입한 박병진 아펙스 대표의 얘기다. 이 영화를 본,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영화 시작 30초 만에 몰입해 끝까지 빠져나오지 못했다. 학벌, 학점 등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인생에서 탈락할 것 같은 현실에 대한 유쾌한 야유 같은 영화”라고 추천했다.
<세 얼간이>(감독 라지쿠마르 히라니)는 인도 명문 임페리얼공대에 입학한 ‘엉뚱한 천재’ 란초, 사진가가 꿈이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공학도를 택한 파르한, 가난한 가족을 위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는 라주 등 세 동기생들이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공대생들은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비루 총장 밑에서 학점과 취업을 위한 학습에 매몰된다. 하지만 ‘란초’만큼은 옆을 돌아볼 겨를을 주지 않는 1등주의에 반기를 든다. 영화는 졸업 뒤 갑자기 사라진 란초를 파르한과 라주 일행이 찾아나서며 현재와 학창시절을 오간다.
영화는 “자기의 꿈, 자기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온다”는 주인공 란초의 대사에 실린 간명한 주제를 141분 동안 반복재생한다.
그럼에도 지루할 틈이 별로 없으니, 희한한 노릇이다. 영화는 때론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물 속에서 전해져오는 감동과 이를 느낄 만하면 분위기를 뒤집는 웃음, 복선, 반전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며 잘 짜인 이야기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간다. 가끔 뜬금없이 나와 몰입을 방해하던 인도 영화 특유의 뮤지컬적 요소가 <세 얼간이>에선 흥을 돋우는 장점이 됐다.
특히 영화는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 인도 영화의 이질감을 내려놓게 된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꿈을 말하기를 주저하는 파르한이나, 자기만을 바라보는 가족을 위해 갈등하는 라주의 모습은 ‘스펙(학벌·학점·경력 등) 쌓기 현실’과 내 꿈이 뭔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청춘들을 엿보게 한다. 무선조종 헬기 조립 등에 여념이 없는 공학도가 총장의 엄격한 학점주의에 좌절하고 자살하는 장면 등은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죽음과도 겹친다. “서커스 사자는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등의 기억할 만한 대사도 많다.
인도 국민배우인 란초 역의 아미르 칸이 실제 47살이란 사실에도 깜짝 놀라게 된다. 괴팍한 비루 총장(보만 이라니)의 연기와, 학생들이 힘을 합쳐 아기를 출산시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영화 마지막 배경인 판공초 호수 등의 풍광을 보는 것은 덤이다. 인도에서 역대 최고흥행 1위(811억원 수익)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개봉된 인도 순수 제작 영화 중 흥행 1위인 <블랙>(2009년·87만명)을 <세 얼간이>가 넘을지도 관심사다.
경쟁주의와 관습에 도전하는 란초의 외침들과 주제의식이 영화 끝까지 집요하게 이어지는 탓에, 누군가는 다 아는 얘기의 과잉 주입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마저도 영화관을 나서면서 란초가 되뇌는 ‘All is well’(다 잘될 거야)란 대사를 ‘올 이즈 웰’로 읽기 곤란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휘파람 불며 외쳐보라”며 자신의 꿈과 대면할 용기를 불러내라는 란초의 인도발음식 주문, ‘알 이즈 웰’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테니.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경쟁주의와 관습에 도전하는 란초의 외침들과 주제의식이 영화 끝까지 집요하게 이어지는 탓에, 누군가는 다 아는 얘기의 과잉 주입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마저도 영화관을 나서면서 란초가 되뇌는 ‘All is well’(다 잘될 거야)란 대사를 ‘올 이즈 웰’로 읽기 곤란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휘파람 불며 외쳐보라”며 자신의 꿈과 대면할 용기를 불러내라는 란초의 인도발음식 주문, ‘알 이즈 웰’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테니.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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