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군>
<천군>은 역사적 인물인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다. 얼핏 전기물로 흐를 수 있는 영화를 색다르게 만든 건 현대 군인들이 과거로 돌아가 장군이 되기 전의 이순신과 조우한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이 첫번째 무과 시험에서 떨어진 뒤 다시 도전해 시험에 붙기까지 4년 동안의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이 시기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서 출발한다. 실존 인물을 다뤘지만 철저한 팬터지 픽션이다.
2005년 압록강 부근 광개토연구소. 남과 북이 함께 극비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만, 주변 강대국의 압력으로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약소국의 설움에 울분을 느낀 북한군 장교 강민길(김승우)은 핵무기를 빼돌리려다 이를 저지하려는 남한군 장교 박정우(황정민) 일행과 맞닥뜨린다. 순간 혜성이 머리 위를 지나면서 이들은 1572년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당시의 압록강 유역은 여진족의 침입이 빈번하던 곳. 현대식 무기로 여진족을 몰아낸 남북한 군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천군’으로 추앙받는다.
이런 그들 앞에 낭인 같은 모습의 한 사내가 나타난다. 무과 시험에 떨어진 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변방을 떠돌며 좀도둑질을 일삼는 28살의 이순신(박중훈)이다. 평소 존경해온 이순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박정우는 그를 진정한 장군으로 거듭나도록 도우려 하지만 이순신의 피폐해진 마음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그런 이순신이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장수로 거듭난 이순신은 남북한 군인, 백성들과 함께 여진족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신선한 발상에서 출발한 <천군>은, 그러나 중반을 훨씬 넘어설 때까지도 밋밋한 흐름을 보인다. 낭인 시절의 이순신과 남북한 군인들 사이의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굴곡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평평하게 이어져, 웃음이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데 힘이 부친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그동안 미뤄둔 박진감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만, 빤히 보이는 교과서적인 교훈과 감동이 오히려 재미를 반감한다. 민준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4일 개봉.
사진 싸이더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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