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에서 교장 역을 맡은 장광씨. 사진 삼거리픽쳐스 제공
영화 <도가니>서 교장·행정실장 1인2역 맡은 장광씨
33년 베테랑 성우…“친구가 길 다닐때 조심하라더라”
33년 베테랑 성우…“친구가 길 다닐때 조심하라더라”
“나도 영화 속의 나를 보면서 ‘저런 나쁜 놈이 있나’란 말이 나오더군요.”
그는 최근 친구 4명과 부부동반으로 영화 <도가니>를 봤다. 친구들도 “길 다닐 때 조심해야 겠다”는 농담 섞인 주의를 줬다고 한다. <도가니>를 본 사람들이라면, 장애 아동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영화 속 쌍둥이 형제 교장과 행정실장에게 격한 분노를 느낄 것이다. 아이에게 ‘너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죽는다’며 손으로 목 긋는 시늉을 하는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 역시 “그 장면을 보고 나도 쇼킹했다”고 할 정도이니.
한 몸으로 두 몸을 연기한 그는 성우 겸 배우 장광(59)씨다. 일부 관객은 실제 쌍둥이인 줄 착각까지 한다. 이건 그의 목소리 연기가 빚어낸, ‘같은 듯 다른’ 목소리 질감의 차이 때문이다. 장씨는 1978년 동아방송 성우로 입사해 80년부터 <한국방송>(KBS) 성우 15기로 활동한 베테랑 성우다. 영화는 “교장 연기를 했다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행정실장 연기를 한”그의 감쪽같은 1인2역 연기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합성했다. 실제 사건에선 쌍둥이가 아니라 2살 차이 형제다.
그는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원작소설을 읽고 내가 맡은 인물에 분노를 느꼈지만, 배역을 위해 너무나도 가슴 아픈 감정을 추스르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표현하도록 애썼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촬영현장에서 아역배우들에게 카메라가 멈추면“괜찮니? ”라고 물으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사회적 공분이 일어날 줄 몰랐어요. 영화의 힘이 크구나 느꼈죠. 그런데 냄비처럼 반짝 끓다 끝나지 말고 이런 피해를 줄이는 법 개정이 될때까지라도 계속 끓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술집에서 웃음을 흘리며 내뱉는 “(이런 게) 사필귀정”이란 대사를 인용했다. “어둠에 가려 어떤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일들도 많을 겁니다. 음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정의로운 가치로 귀결되는 사필귀정의 사회가 돼야 합니다.”
요즘 그의 연기는 극장 스크린에서 전국적 공분을 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에서 꽤 재미있고 불의를 못 참는 캐릭터에 활기를 불어넣곤 했다. 애니메이션 <슈렉>의 한국어 더빙판에서 주인공 ‘슈렉’,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철철대왕 등을 맡았고, 후시녹음을 한 영화 <장군의 아들> 2편과 3편에서 김두한(박상민) 목소리도 연기했다. 그는 “당시 임권택 감독님께서 박상민씨의 얼굴이 어려보이니, 목소리를 굵게 해달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문화방송>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군인을 맡아 전두환(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와 모자를 벗고 연기하다가, “더 전두환처럼 보인다”는 피디의 평을 듣기도 했다. 결국 당시 피디가 나중에 연출한 드라마 <3김시대>에서 그는 진짜 전두환 역도 맡았다.
‘제작극회’란 극단에서 활동하다 성우가 된 그의 가족은 연기자 집안이다. 아내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공주댁으로 나온 전성애씨고, 딸은 <한국방송>(KBS)의 <개그스타>에 나온 신인 개그우먼(장윤희)이다. 아들도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본 큰 딸도 “아빠, 전철타고 다니려면 (위험하니) 살 빼고 다녀야 겠다”고 했다니, <도가니>는 장씨의 바람처럼 그를 뚜렷이 아로새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삼거리픽쳐스 제공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삼거리픽쳐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