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민(29) 감독
영화 ‘물고기’ 박홍민 감독
가뜩이나 비좁은 작업실의 책상 위엔 컴퓨터 모니터 4개가 들어차 있다. “지난해 11월5일부터 28일까지 촬영하고 후반작업만 9개월 하는 동안 저 모니터를 거의 끈 적이 없죠.” 그는 입체안경(3D)을 닦아 건네면서 불을 껐다. “‘내 방에서 혼자 틀고 끝나면 어쩌나’ 공포감도 있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 작품이) 간다니 다행입니다.”
13㎡(4평) 남짓, 꽉 막힌 이곳에서 박홍민(29) 감독은 사람과 공간에 입체감을 불어넣은 3D 미스터리 장편영화 <물고기>를 완성했다. 3D 카메라로 모두 찍었다. 수백억, 수천억원대 3D영화가 나오는 판에, ‘제작비가 7000만원’이란 얘기는 비현실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2009년. 최성원 조명감독이 “우리 3D 찍어볼래?”라고 했을 때, 박 감독도 “허황된 소리”란 반응이었다. 그땐 3D영화 <아바타>가 국내를 강타하기도 전이었다.
지난 4일 서울 시내 작업실에서 만난 박 감독은 “이 정도 제작비로 3D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했지만 (공부와 시간 등) 감당할 게 너무 많았다”고 웃었다. “(영화 주소재인) 진도 씻김굿과 풍광을 입체로 담으면 감흥이 클 것 같았고, 입체공간이란 기호를 가져오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물고기>를 재밌게 풀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여러 입체영화 기술교육 과정에도 참석하고, 관련 자료와 책도 독파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동아방송예술대와 디마엔터테인먼트가 입체영상을 만드는 연구 프로그램에 <물고기>가 뽑혀 제작비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산학협력 지원 프로그램이 단편영화 7편을 만든 신인감독의 숨통을 틔운 셈이다. 이들은 ‘3디에이1’이란 3D 카메라도 지원했다.
그래도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아 스태프 20여명과 전남 진도 소포리 문화회관에서 같이 자며 촬영했다. 입체감을 조정하는 일, 수천만원이 든다는 장편영화 3D 자막작업, 영상에 빛과 색을 입히는 ‘색보정’ 등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작업도 직접 해결했다. 박 감독이 재학 중인 동국대 영상대학원(연출전공) 스튜디오에서 컴퓨터그래픽(CG)으로 합성할 안개 장면을 찍는 등 주변의 도움도 구했다.
완성도는 초저예산 제약을 뛰어넘는다.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부문에 출품돼 상영된다. 영화는 아내를 찾아나선 교수와 아내가 무당이 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흥신소 직원을 축으로 전개된다. 전찬일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발견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라며 “일련의 반전이 펼쳐지는 이야기도 입체적”이라 평했다. 감독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혼돈을 겪는 교수의 뒷배경을 초점이 흐려진 화면으로 처리해 그 입체적 뒷공간을 인물의 ‘정신적 세계’로 연출하는 등 영화 표현의 전복성을 곳곳에서 꾀한다. 그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또다른 세계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찾는 존재는 무엇일까’ 등을 관객들이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관객과 소통하는 흥미로운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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