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야 놀자
안성기·강수연·강제규·이범수 등 동트도록 술잔 나누며 이야기꽃
“여배우 의상 한달 준비했는데 오인혜 한방에 묻혀”
안성기·강수연·강제규·이범수 등 동트도록 술잔 나누며 이야기꽃
“여배우 의상 한달 준비했는데 오인혜 한방에 묻혀”
지난 6일 부산 해운대에서 막을 올린 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14일 폐막)가 연일 영화의 성찬을 펼치고 있다. 관객들이야 영화 상영 시간표를 들고 숙소를 나서겠지만, 영화인들은 ‘밤의 스케줄’을 중요하게 챙긴다. 해운대 해변과 숙소인 호텔 주변의 술집과 포장마차 등에서는 매일 밤 배우, 감독 등 영화인들만의 술자리가 벌어진다. <한겨레> 영화 담당 기자들이 지난 6~10일 4박5일간 ‘영화제의 밤’을 둘러봤다. 이슥한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편집자
배우 강수연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며 잔을 부딪쳤다. 처음 본 이가 옆에 앉아도, “자, 이분이 어디서 뭐하는, 누구시랍니다”라며 영화인들에게 소개했다. 잔에 절반 넘게 담겨 찰랑거리던 소주가 한번에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강제규 감독은 ‘오뎅바’에 ‘2차 술판’을 차렸다. 영화 <마이웨이>를 같이 찍은 장동건,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 1차를 끝낸 뒤였다.
배우 이범수가 선술집 앞을 지나쳤다. 이번 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이 출품되지 않았지만 부산에 왔다. 하긴. 영화인을 두루 만나기에 이 시간,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다. 술집에서 그를 본 다른 일행이 “어딜 가쇼?”라고 전화를 걸어 멈춰 세웠다. 이렇게 하나둘 붙잡혀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이 여럿이다.
개막식 노출패션으로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제치고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른 신인배우 오인혜도 지나가다 인사를 건넨다. 인터뷰 요청이 많아 “영화제 와서 갑자기 바빠졌다”고 했다. 행사장에 들렀다 오는지, 드레스 차림이다. 어제 술자리에서 한 스타일리스트가 “개막식에 우리 여배우가 입을 의상을 한달 가까이 준비했는데, 오인혜의 한방에 묻혔다”던 푸념이 스쳐갔다.
이들과 ‘나’는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2시에, 5시에, 어느 술집에서, 거리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다음날에도 서로가 비슷한 곳을 또 맴돌았다. “영화제에 처음 상영작으로 뽑힌 나의 첫 장편 영화를 부모님께 극장에서 처음 보여드렸다”던 신인감독의 웃음과 마주한 것도 새벽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어둠이 깔리면 영화인들의 ‘또다른 낮’이 시작된다. “영화인들은 영화제에서 영화를 거의 못 봐요.” 괜한 얘기가 아니다. 새벽녘에야 잔 뒤, 낮에 공식행사에 참석하고, 다시 새벽까지 이어질 밤을 맞는다. 1년 중 영화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이때를 서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영화제 땐 ‘영화인의 밤’ ‘배우의 밤’ 행사뿐 아니라, 국내 투자·배급사들이 주최하는 각종 파티도 열린다. 한 배급사는 나이트클럽을 통째로 빌려 1000명 남짓한 영화인들을 불렀다. 디제이 디오시, 걸그룹 시크릿 등의 축하공연도 마련했다. 다른 배급사는 창고처럼 비어 있던 술집 2층까지 개조해 사람들을 초청했다. 배급사들은 이 파티에서 내년 개봉할 자신들의 영화를 공개했다.
그러나 ‘비프(BIFF)의 밤’은 “해운대 포장마차 ‘4호집’으로 와요” “어디 가요? 여기 앉아”란 말과 함께 깊어간다. 횟집에서 만난 영화 <도가니> 관계자는 “개봉 즈음 불었던 ‘안철수 현상’을 보면서 우리 영화를 관객들이 많이 볼 수 있겠다란 생각도 했다”며 술잔을 들었다. “기득권에 대한 실망감과 뭔가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소망이 투영된 그 ‘현상’의 표출이 <도가니>의 메시지와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지금 반응으론 관객 600만명도 가능하지만, 우리 영화가 무슨 큰 수익을 남기려고 시작한 게 아니어서 이런 얘기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영화 <최종병기 활> 제작팀은 700만 돌파 기념파티를 모둠전 술집에서 열었다. 그 시간이 밤 12시였다. “오늘(7일)이 아버지 생신이어서 미역국 같이 먹고 부산에 왔다”는 문채원이 주연배우 박해일 등과 섞였다. <최종병기 활>과 <고지전>에 모두 나온 류승룡은 두 작품 관계자들의 술자리를 오가느라 바빴다. 안성기, 강수연 등 선배 배우들도 들렀다. 강수연은 김한민 감독 등과 <최종병기 활>의 흥행성적을 적은 판을 들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새벽 2시께 영화 <써니> 팀이 몰려왔다. “기자분들, ‘활’이 ‘써니’의 올해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넘었다고 기사 쓰면 안 돼요” 등의 농담이 오가자, 웃음이 터졌다. 한쪽에선 “<도가니> 흥행만 아니었으면 <최종병기 활>이 벌써 800만도 넘었을걸”이란 얘기도 나왔다. 한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흥행하지 못했거나, 올해 작품을 내놓지 못한 감독들은 자존심이 있어 오지 않거나, 와도 얼굴을 잘 안 드러내요. 올해 영화제엔 역시나 <최종병기 활> <써니> <도가니> 감독들이 곳곳에서 많이 보이더군요.” <써니>의 강형철 감독은 이 영화 스태프가 만드는 단편영화에 여배우 강소라 등과 배우로 출연해 영화제 기간 부산 거리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올해 영화제에 대한 아쉬움도 안줏거리로 올랐다. 한 대학 영화과 교수는 “영화제가 영화담론을 생산하겠다며 ‘영화포럼’을 처음 개최했는데, 입장료가 5만원이다. 공부하는 학생 등에게 부담이 큰 액수”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용상영관인 ‘영화의 전당’ 안의 극장만 서둘러 개관하고 매점, 식당 등 편의시설은 하나도 열지 않아 불편했다”거나, “올해부터 해운대 센텀시티에 상영관이 몰리게 돼 동선은 편해졌다지만, 대형건물들만 휑하게 있어 삭막하다”는 불만들도 나왔다. 자신의 영화 상영 도중 영상사고를 겪은 한 감독은 “상영하다 영화가 꺼져 환불했던 다른 영화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독립영화인들의 걱정도 술잔에 채워졌다. 독립영화계가 추진하는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의 설립·운영자금이 잘 마련될까란 우려가 흘러나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관(인디플러스)은 서울에 1개관만 있다. 좌석은 100석이 채 되지 않는다. 한 감독은 이런 얘기도 꺼냈다.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문제해결을 위한 ‘희망버스’가 오면 영화제를 방해할 것이라고 했는데, ‘희망버스’와 영화의 본질은 모두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거잖아요. 부산이 문화행사 같은 ‘희망버스’를 억지로 막지 않는 여유를 가졌다면 어땠을까요? 영화제의 이미지가 더 좋아졌을지도 모르죠.”
개막 뒤 나흘째인 9일 밤. 해운대 해변가를 걸어 다시 술집으로 향하는데, “컷! 좋아!”란 외침이 ‘철썩’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대학생들이 단편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조명기 4대가 어두운 촬영장을 밝혔다. 그들 위에 뜬 ‘빈대떡’(너무 술을 마셔서인가?) 같은 둥근 달이 이 젊은 청춘들의 카메라와 이곳 어느 골목 술집의 영화인들을 동시에 비추고 있었다.
부산/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지난 8일 늦은 밤 부산 해운대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영화 <최종병기 활>의 관객 700만 돌파 기념 파티 풍경. 김한민(오른쪽) 감독, 배우 강수연(가운데),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손광익 대표가 흥행스코어를 기록한 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위 큰 사진). 아래 왼쪽 사진은 6일 개막식 뒤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개막파티 만찬 광경, 오른쪽 사진은 개막파티 참석자들이 일본 인기배우 오다기리 조(맨 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부산일보> 김호일 기자, 부산국제영화제(BIFF)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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