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프랑스 영화 ‘비기닝’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차가 너무 막힌다’고 둘러대는 수준의 거짓말이 아니다. 돈 한푼 없이 고속도로 건설을 재개하겠다며 마을을 통째로 움직인 블록버스터급 사기. 더군다나 이건 프랑스에서 있었던 실화다.
프랑스 영화 <비기닝>(27일 개봉·감독 그자비에 지아놀리)은 한 떠돌이 사기꾼의 이야기다. 필리프(프랑수아 클뤼제)는 2년 전 고속도로 건설을 중단한 건설회사의 직원이라고 속여 마을에 들어간다. 공사를 다시 하겠다는 그의 말에 일감이 떨어진 건설장비 업체 등은 자기들과 계약하자며 뒷돈 현찰을 건넨다. 각종 공사비용을 석달 뒤에 후불결제하겠다며 공사를 벌인 필리프는 판이 점점 커지자, 돈을 들고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필리프는 다시 돌아선다.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다 일자리와 희망을 얻어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을 믿고 사랑에 빠진 마을 여시장 스테판(에마뉘엘 드보스)의 마음. 마을에 생기를 심어준 것에 고마워하며 그에게 선물한 아이들의 그림. 이것들이 미래에 대한 설계 없이 살아가던 그를 흔든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옛 친구가 나타나고, 그를 의심하는 소문들이 무성해지지만 필리프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사를 완수한다.
영화는 거대한 사기극의 전말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롭다. 필리프가 이 거짓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궁금함, 상처를 받을 마을 주민들에 대한 연민 등이 겹치면서 극에 점차 빨려든다. 하지만 <비기닝>은 사기 행각이 들통나는 과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진심 어린 기대감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뀌게 할 수 있는지, ‘관계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는 진짜 현실이 방치했던 삶의 희망이 오히려 사기와 거짓으로 되살아나는 역설을 통해 거짓보다 못한 현실도 날카롭게 응시한다. 사기극에서 감흥을 느끼게 하는 묘한 작품이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이는 <비기닝>은 200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실제 그 사기꾼은 어떻게 됐을까? 돈 한푼 챙기지 않은 채 공사 관련 규정을 준수하며 도로를 완성했던 사기꾼은 결국 수감됐다. 이후 출소했지만 현재 행방은 오리무중. 원래 고속도로 공사를 맡았다가 중단했던 건설회사는 남은 구간 공사를 이어갔고, 마을사람들을 재고용했다고 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판씨네마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