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행 실화를 극화한 영화 <도가니> 개봉 직전인 지난 9월 중순께였다. 원작 소설을 쓴 공지영 작가에게 준 판권료가 ‘1억원 남짓’이란 말들이 영화판에 흘러나왔다. 영화 <도가니> 관계자들은 보통 비공개인 판권료의 언급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개봉도 하기 전에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와 영화화에 동의한 공 작가의 진정성이 자칫 ‘액수’에 희석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도가니> 판권료는 두터운 팬층을 가진 공 작가 작품인 만큼, 충무로 최상급 수준이다.
최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 <완득이>가 사회적 파장과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충무로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소설의 힘’이 새삼 입증되고 있다. 영화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한 원작들의 판권료는 1억원을 넘어섰다.
요즘 충무로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도 영화화를 공동 준비중인 위더스필름·펀치볼 쪽과 1억여원의 판권료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작사 10곳 이상이 달라붙은 이 작품엔 영화수익 일부를 받는 ‘러닝개런티’ 조건도 붙었다고 한다. 165만명을 불러들인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원작 만화가 강풀에게 1억원 넘는 판권료를 줬다. 제작사인 ‘그대사엔터테인먼트’ 쪽은 “영화·드라마·연극 제작을 모두 묶은 패키지 판권료”라고 전했다.
영화계에선 2008년 개봉한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의 판권료가 1억여원에 이르면서 억대 판권료가 본격화했다고 본다. 영화화되지는 못했지만, 1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김별아 작가의 <미실>이 영화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 데 이어, 이중결혼이란 독특한 소재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2회 수상작으로 결정되자 영화사들의 열띤 경쟁이 붙은 결과다.
원작 소설의 판권료는 공지영 같은 ‘대형’ 작가들의 경우 영화사와 직접 교섭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대개는 출판사가 판권협상을 벌여 판권료를 작가와 출판사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가져간다고 한다. 1억원대 판권료는 아직까지 몇몇 작품에 한정된다. 다문화, 청소년 교육, 소외된 이웃 등의 사회문제를 훈훈하게 풀어내 관객 200만명 돌파를 앞둔 <완득이>는 판권료가 5000만원 수준이다. 제작사 쪽은 “3년 전 계약을 맺었는데, 김려령 작가의 첫 작품이라 당시 그렇게 책정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 관객 200만명을 넘긴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제작사 비용 부담을 고려해 1억원대 아래로 판권료를 조금 낮추되, 제작사 수익지분 일부를 이후 받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원작의 최고 판권료가 1억원대에 이른 데 대해선 과다금액이란 의견과 여전히 과소평가된 것이란 주장이 맞선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1억 판권료는 초기 제작비용이 올라가는 부담을 준다”며 “그 작품에 걸맞게 각색하려면 유명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겨야 하는 등 제작비 동반 상승 요인도 있다”고 했다. 다른 제작사 대표는 “판권료만 내고 영화화하지 못한 작품도 여럿 있다”며 “제작사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1차 계약금을 지불한 뒤, 투자금을 모두 확보했을 때 잔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의 보완책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출판사 ‘창비’ 관계자는 “배우들의 높은 개런티와 할리우드 등에서 원작 작가에게 예우하는 수준에 비하면 지금 국내 영화계의 판권료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사들이 원작 내용이 탄탄해도 작가가 유명하지 않다며 1000만~2000만원 정도로 낮춰 부르기도 한다”며 “영화 시나리오가 담당할 상상력을 문학이 대신 제공해주는 건데, 몇몇 영화인들은 상업적 마인드로만 접근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영화사 대표도 “최근 일부 톱 배우 출연료는 6억원 이상”이라며 “유명 작가 베스트셀러 작품이란 홍보효과, 작가가 꼼꼼히 취재해 쓴 스토리를 차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판권료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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