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
13년만의 작품 ‘젊은 노련미’
‘석궁테러사건’ 실화 통해
법에 짓밟히는 인권 고발
13년만의 작품 ‘젊은 노련미’
‘석궁테러사건’ 실화 통해
법에 짓밟히는 인권 고발
이 영화를 보며 든 첫번째 생각은, ‘도대체 노감독은 13년간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참았을까’였다. 사법부가 관람하면 분명 ‘붉으락푸르락’할 내용을 힘있게 건드리면서도, 유머있게 풀어내는 ‘젊은 감각의 노련미’가 번뜩인다.
배우 안성기, 박원상의 캐릭터가 충돌하고 화해하며 빚어내는 기묘한 호흡은 극의 활력을 심는다. 제한된 예산(순제작비 5억여원)과 적은 등장인물로도, 극에 몰입시키는 힘은 결코 작지 않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사법부의 행태를 목도하게 해 ‘기가 찬’이란 표현이 적합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감독은 진보진영 인사인 배우 문성근에게 ‘보수꼴통 판사’ 역을 맡기는 ‘이질적 캐스팅’의 묘미도 즐기는 듯하다.
4년 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석궁테러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내년 1월19일 개봉)이 지난 19일 언론시사회를 열었다. 사법부의 위선을 강도 높게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이면서, 대중성을 놓치지 않은 실화영화다. 정지영(65) 감독이 <까>(1998년)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복귀작이기도 하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교수지위 확인소송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맞혔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4년간 복역하고 최근 만기출소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실제 사건을 다룬다. 김 전 교수는 대학시험 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에서 김 전 교수는 ‘김경호’(안성기)로, 그를 변론한 실제 박훈 변호사는 ‘박준’(박원상)이란 인물로 등장한다.
실제 공판기록을 토대로 한 영화는, 사건을 ‘사법테러’로 규정한 뒤 쏘지 않았다는 피고 김경호의 주장을 묵살하는 ‘재판부의 맨얼굴’을 비춘다. 김 전 교수가 부장판사의 배를 맞힌 혐의를 입증할 ‘부러진 화살’도 현장에 없었을뿐더러, 부장판사 옷에 묻은 ‘혈흔’이 누구 것인지 조사도 하지 않았으며, 겉옷과 속옷 사이 와이셔츠에만 혈흔이 없다는 데서 비롯한 증거 조작설 등에 대한 ‘합리적 의심’들을 보여준다. 안성기가 맡은 김경호는 실제 김 전 교수처럼, 법정에서 여러 법조항을 인용하며 판사·검찰과 설전을 벌이고 “(제발) 법대로만 해달라”고 촉구한다. 사법부를 겨눈 시선은 영화 <도가니>보다 더 날카롭다. 영화는 사법부의 견고한 동맹이 정당한 법 집행과 한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묵살할 수 있는지 들춰낸다. 법정에 달걀을 던지는 장면, “사법부의 오만함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주인공들의 날선 대사도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김 전 교수를 위한 박준 변호사의 최후변론에는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언급된다. 박준은 “유대인 포병장교 드레퓌스가 프랑스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진범과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어도 사법부 권위를 위해 이를 묵살한 1800년대의 일이 지금의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정지영 감독은 “사법부 관계자들이 영화를 보면 많이 아플 것”이라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아우라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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