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의 디렉터스 컷
예전에 방송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때, 아동일시보호소의 아이들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미아가 된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지기 직전, 100여일 정도 임시로 머물고 가는 기관이다.
그곳에서 항상 작은 담요를 꼭 쥐고 다니는 서너 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아이들과 놀 때도 담요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서적 불안감 때문에 울고 보채는데도, 유독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 아이. 하지만 그 평온함은 두 손에 담요가 쥐여 있을 때뿐이었다. 목욕을 하기 위해 담요를 잠시 뺏으려 하면, 아이는 경기라도 일으킬 것처럼 크게 울며 소리쳤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담요를 손에 쥔 채 벌거벗고 목욕을 하곤 했던 아이. 보호소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가 놓지 않으려 했던 그 담요는 이곳에 들어온 직후 처음 덮고 잤던 담요라고 했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단절되자, 아이의 본능이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그 담요였던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손에서 담요를 놓아야만 하는 순간을 생각하자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아이와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될 담요의 마음에 대해서. 그 아이와 헤어지고 다른 아이의 몸을 덮게 되었을 때, 담요는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 수명이 다해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순간이 온다면 담요는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떠올릴까. 담요한테 그 아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다 보니, 아이의 삶만큼 그 담요의 삶 역시 아프게 다가왔다.
얼마 전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에서 보게 된 김지현 감독의 <요세미티와 나>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일명 요세미티라고 불리는 애플사의 1999년형 컴퓨터와 감독의 9년간에 걸친 사랑과 이별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연애에 관하여> <뽀삐> <앞산전> 등의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김지현 감독은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 했던 고물 컴퓨터 ‘요세미티’와의 파란만장한 인연을 독특한 유머와 페이소스 속에 녹여내고 있다. 중고이긴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했던 요세미티와의 첫 만남. 그러나 구입한 지 1년 만에 속도도 느리고, 부팅도 잘 안되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물 컴퓨터가 되어버린 요세미티. 감독은 속 터질 만큼 느리게 작동하는 요세미티를 원망하기도 하고, 새로운 컴퓨터와 작업하기 위해 아예 책장 꼭대기에 버려두기까지 한다. 그러나 제작비가 떨어지고, 스태프도 떠나가고, 현장에서 구박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감독이 다시 찾아가는 건, 결국 요세미티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감독과 요세미티의 이별 장면은 그 어떤 슬픈 영화보다 아프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요세미티를 떠나보내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감독의 뒷모습. 떠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아버린 허망함. 그리고 9년간 자신을 원망하고 사랑했던 주인과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하는 요세미티의 마음. 생의 마지막 순간 요세미티가 떠올리게 될 단 한 사람.
영화를 보고 난 뒤, 예전의 그 담요처럼 요세미티 역시 하나의 엄연한 존재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영혼과 감정. 바로 그곳에서 모든 존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요세미티와 나>는 올해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사랑스럽고 가슴 저릿한 멜로영화였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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