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핏차퐁·스카모토·송일곤
전주국제영화제의 얼굴로 자리잡은 프로그램 ‘디지털 삼인삼색’이 처음으로 일반 극장에서 개봉된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3명의 감독이 디지털 작업으로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영상을 담은 3편의 중편을 옴니버스로 묶어 상영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4월28일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여섯번째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는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일본의 스카모토 신야, 한국의 송일곤 감독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열대병>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만든 <세계의 욕망>은 정글에 관한 얘기다. 낮에는 정글 속으로 도망치는 한쌍의 남녀가, 밤에는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무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영화 스태프들이 있다. 언뜻 영화제작 현장을 기록한 것 같은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은 “지난 5년 간 정글에서 함께 했던 영화 만들기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욕망>에선 영화 속 영화 안과 밖의 장면들이 마구 뒤섞인다.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는 보는 이의 관습을 무장해제시킨다. 스카모토 신야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맡아 연기한 <혼몽>은 폐쇄공간 속에서 느끼는 극도의 공포감을 다뤘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오는 한 남자는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점차 자신이 몸을 간신히 움직일 틈밖에 없는 좁은 벽 공간 사이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엄청난 고통과 함께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폐쇄된 공간과 날카로운 장애물이 시시각각 조여오는 가운데 이 남자는 필살의 탈출을 감행한다. 좁은 폐쇄공간 안에서 시종일관 극도로 가까이서 잡은 카메라의 영상은 기괴한 공포감을 준다. <꽃섬> <거미숲>의 송일곤 감독이 만든 <마법사(들)>은 컷 없이 한번의 테이크로 30여 분을 이어가며 다른 시공간대를 담은 실험적인 영화다. 단 한대의 카메라가 장면의 끊어짐 없이 계속 뒤쫓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여러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극적인 요소를 영화에 그대로 차용한 셈이다. 젊은 시절 음악 밴드를 함께 했던 멤버들이 뒷날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는 게 얘기의 틀거리다. 3편의 영화 가운데 이야기 구조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이 영화는 내용보다는 형식의 실험에 치중한 경우다. 이번 ‘디지털 삼인삼색’은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캐나다 밴쿠버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22일 서울 필름포럼 개봉.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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