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으로 2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1983년. 시상식 무대로 나오다, 수상소감을 적은 종이까지 바닥에 떨어뜨린 메릴 스트립의 첫 마디는 “오, 보이!(Oh, boy·오, 이런)”였다. 영화 <소피의 선택>으로 34살에 5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처음 받는 자리였다.
2012년. 29년 전 시상식 때와 같은 색상(노란색)의 원피스를 입고, 그가 뱉은 수상소감 첫 마디도 “오, 마이갓!(오, 세상에)”이었다. 주름진 63살 나이에, <철의 여인>으로 다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것에 감격한 듯 그는 벅찬 호흡으로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미국인 절반이 ‘이럴 수가, 다시 그녀라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곤 “마지막에 얘기하면 (시상식) 음악에 묻힐 수 있다”며 네 명의 자녀를 함께 키우는 조각가 남편 던 검머를 가장 먼저 부르며 “감사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27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84회 아카데미 시상식. 메릴 스트립은 <헬프>의 비올라 데이비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루니 마라 등의 후보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인 17차례 후보(여우주연 후보 14회·조연상 후보 3회)에 오른 신기록도 남겼다. 아카데미 수상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80·여우조연상), <소피의 선택>(여우주연상)에 이어 세 번째. 그는 남녀 배우를 통틀어 캐서린 햅번(사망·여우주연상 4회)에 이어 아카데미 역사상 두 번째 최다수상자가 됐다. 앞서 그는 <철의 여인>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금곰상, 미국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드라마부문) 등을 받았다.
메릴 스트립은 <철의 여인>(한국 23일 개봉)에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의 단단함과 노년의 대처가 지닌 쓸쓸함을 담아냈다. 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그는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에너지가 넘쳤다”며 연기 열정을 칭찬했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인 그가 영국 보수당 출신의 대처를 연기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메릴 스트립은 “정치적 결정 때문에 인간으로서 치러야 했던 대가와, 그 개인에 지워진 부담을 한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날 이끌었다”며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드라마스쿨 석사 출신인 그는 연극 무대를 거쳐 영화로 영역을 넓혔다. 섹시미인 스타일에서 벗어난 메릴 스트립은 외모 탓에 영화 오디션 낙방도 수차례 겪었지만, <아웃오브아프리카> <맘마미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여인을 자신의 얼굴에 담아냈다. 어떤 이라면, 콤플렉스로 여길 법한 긴 코에 대해서도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의 향을 고를 수 있는 길고도 좋은 코를 주어 감사하다”고 맞받아치는 재기를 갖춘 배우였다.
도태된 무성영화 스타와 유성영화 시대 스타로 떠오른 신인 여배우와의 사랑을 그린 <아티스트>는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의상상·작곡상 등 5관왕을 쓸어담았다. <비기너스>의 크리스토퍼 플러머(82)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역대 아카데미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휴고>는 촬영상·음향상 등 5관왕을 차지했다. 외국어영화상은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이란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 돌아갔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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