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즉설
개인적인 얘길 해서 죄송하지만, 필자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씨지브이(CGV) 무비콜라주에서 특정 영화를 해설하거나 감독을 초청해 대담을 한다. 3월에는 무비콜라주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이벤트를 마련하는데 필자도 몇 번 행사를 마련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위탁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에서도 나름 독립영화 화제작들을 모아 상영하는 이벤트가 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대단히 다양한 자리가 마련돼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만 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무비콜라주관이 워낙 적어 별로 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영화들이 적은 스크린 수를 나눠가져야 하는 형편이다. 민간 극장 체인에 맡겨두지만 말고 좀 화끈하게 나라에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전국 100개관 정도의 상영관 체인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중 곧 개봉하는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8일 개봉)를 먼저 보았다.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 태양>, 두 편의 장편 극영화를 연출했던 정재은은 영화 속 배경으로 나오는 공간의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살려내는 데 능한 감독이다.
<말하는 건축가>는 고 정기용(사진) 건축가의 말년을 기록한 것이자, 그의 전체 작품세계를 요령 있게 안내하는 입문서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 같은 건축 문외한에게는 그랬다. 건축이 삶의, 역사의 흔적이 아니라 토목자본과 권력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형태과시주의로 흐르는 한국 건축 주류에 대한 정기용의 반골적 태도는 이 다큐멘터리 내내 관객에게 일관된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예술가의 소외를 영웅적으로 감당하며 병마와 싸우는 강인한 표정을 점점 쇠락해져가는 자신의 얼굴과 몸에 새기고 있다.
약간 놀란 것은 그런 주인공을 대하는 감독 정재은의 입장이다. 꽤 극적인 사건이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은 전혀 정서적 배색을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단정하고 차분하며 가끔 서정적이고 중립적이다. 격한 파토스를 원하는 관객은 불만이겠지만 이런 연출 접근의 강점은 여운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영웅적 자취 대신에 그가 남긴 삶의 흔적, 특히 건축을 통해 남긴 살아가는 것들의 감각이 강하게 화면에 풍긴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는 정기용이 자신이 지은 면사무소 입구에서 촌부들 무리에 섞여 계단 근처에 앉아 있는 이미지다. 그가 지은 면사무소는 겉보기에 특출할 게 없지만 거기 드나드는 사람들의 필요를 존중해 만들어졌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게 목욕탕이라는 걸 알고 그는 그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지어놓는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몰려와 줄을 서서 목욕탕을 이용한다. 그들에게 이 면사무소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고 카메라가 묻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들 곁에서 정기용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자신이 지은 삶의 공간을 음미하고 있다.
누군가가 기억해주지 않아도, 그 건축물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때를 통해 흔적을 새길 것이고 그게 역사가 될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포함해 우리 주변의 건물들이 사람들의 드나듦을 포용하며 어제와 오늘의 역사적 자취를 이어가는지 모르겠다. 정재은의 필모그래피는 역시 일관성이 있었고 저력을 보여줬다. 공부 한번 잘했다. <말하는 건축가>를 보며 정기용이 남긴 책들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명지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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