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별
봄이 오는 걸 느끼시나요? 3월에 사랑과 삶의 의미를 묻는 영화 3편이 찾아옵니다. 장애를 가진 부부(<달팽이의 별>·22일 개봉), 죽음을 앞에 둔 노부부(<해로>·22일 개봉), 사고로 결혼의 기억마저 잃은 아내와 사랑의 떨림을 살려내려는 남편(<서약>·14일 개봉), 그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떠나가서, 삶이 무기력해서, 이런 영화와 마주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요? <달팽이의 별>에서 시청각장애인 영찬씨는 “형은 장가가려고 어떤 준비했었어? 경제력?”이라며 시샘하는 후배 장애인에게 “응. 준비했지. 외로움”이라며 웃습니다. 외로움과 내 삶에 대한 긍정은 또다른 사랑과 행복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그는 위로합니다.
장애 없는 ‘마음의 더듬이’ 이보다 아름다울 순 없다
민용근의 디렉터스 컷
■ 달팽이의 별
흔히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듣는 것을 믿는다. 그 믿음에서 마음이 생겨나고, 그 마음들이 모여 진실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귀가 항상 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눈과 귀를 통해 전해진 것들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마음속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기도 한다. 무한한 정보들로 넘쳐나고, 점점 화려한 포장 속에 익숙해지는 세상 속에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의 눈과 귀는 더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육체적 감각의 과잉 속에서, ‘마음의 감각’은 점점 무뎌져가고 있는 것만 같다.
시청각장애·척추장애 부부
침묵·절제 속 감동적 일상 <달팽이의 별>(감독 이승준)은 시청각중복장애를 가진 영찬씨와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순호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어렸을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시청각장애인이 된 영찬씨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대신 섬세한 마음의 감각을 지닌 남자다. 아내 순호씨는 성인 남성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를 가졌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여자다. 외모는 많이 다르지만 이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조화롭고, 매력적인 커플이다. 영화를 보며 두 사람의 모습에 매혹된 순간은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였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영찬씨이기에, 그들의 대화엔 언제나 촉각이 사용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등 쪽 손가락에 각자의 손끝을 톡톡 찍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인 ‘점화’(點話)를 통해 대화한다. 카메라는 서로의 손 위에 올려진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사람의 손가락을 오래도록 비춘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에 두 사람은 서로 끊임없이 반응한다. 그 모습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마치 두 마리의 달팽이가 각자의 더듬이로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교감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오로지 손가락의 촉각으로만 교감하는 모습은 그 어떤 사랑의 몸짓보다 농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구는 승차감이 없는 기차와 같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아침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으로 여행을 한다”며, 영찬씨는 종종 자신이 느끼는 세상을 짤막한 시구절로 표현하곤 한다. 답답함과 불편함에 둘러싸여 있지만, 영화를 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부부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산책을 하고, 나무를 만지고, 형광등을 교체하는 모습을 보며, 잠들어 있던 ‘마음의 감각’이 새싹처럼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자잘한 일상이 그토록 아름다운 순간이었던가, 하는 느낌.
<달팽이의 별>은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이 영화에 대한 상찬은 화려하지만, 막상 영화는 겸손하고 단아하다. 결코 두 사람의 장애를 동정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으며, 아름답게 치장한 장면이나 음악으로 보는 이의 감각을 현혹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영찬씨와 순호씨의 소통처럼, 가장 단순하고 정제된 방식을 통해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영찬씨의 이 짧은 시구절은 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지만, 절제와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찬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민용근 영화감독·사진 크리에이티브 이스트 제공
죽음마저 당신 없인 안돼
■ 해로
병마 덮친 노부부의 황혼
인생·사람 소중함 일깨워 영화 속에서 잠을 못 이루던, 아내가 말한다. “당신 먼저 죽지 마. 당신 없이 혼자 어떻게 살아? 아니야. 당신이 먼저 죽는 게 좋겠어. 내가 일주일만 더 살다 죽을게. 당신 잘 보내야지. 그것도 안 되겠다. 당신 죽는 거 어떻게 봐?”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제 노부부는 집에 둘만 남았다. 남편이 먼저 심장마비의 위기를 넘기고 삶을 더 붙들려 할 때, 이번엔 아내에게 췌장암이 덮친다. 영화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예상하듯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와, 아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렇게 아내를 혼자 떠나보내야 하는 건지 고통스러워하는 남편, 두 부부의 황혼녘 사랑얘기다. <해로>(감독 최종태)는 병마 앞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 죽음을 고민하는 노부부를 비추면서, 당신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동행할 사람이 누구인지 물으며, 그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언제든 한번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며,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행복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베테랑 연기자 주현(남편), 연극배우 예수정(아내)의 연기적 깊이가 어떠한가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 빠른 속도의 극에 익숙한 관객에게 잔잔한 <해로>는 꽤나 더딘 흐름의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까지 관객을 끌고가는 힘은 두 사람의 연기호흡에서 상당부분 나온다. 연예인들이 종종 오락프로그램 등에서 ‘주현 코믹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는데, 주현은 이 영화에서 그런 잔상을 말끔히 씻는다. 예수정은 죽음과 남편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슬픔과 기쁨의 복합된 느낌을 얼굴에 담아낸다. 부부가 꽃이 가득한 방 안에서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껴둔 눈물을 짓게 한다. 핀란드 타우노 일리루시 작가의 소설 <핸드 인 핸드>를 원작으로 삼았다. 송호진 기자, 사진 고유FN 제공
기억해줘, 내 아내였음을
■ 서약
사고로 기억 잃은 아내와
두번째 사랑 꿈꾸는 남편 사랑의 기억을 공유하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그 기억을 잊는다. 남편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기억의 상실. 어디서 많이 본 그렇고 그런 얘기이다 싶지만, 할리우드 영화 <서약>(감독 마이클 수시)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데서 그 진부함을 어느 정도 털어낸다. 아내 페이지(레이철 매캐덤스)는 기억을 찾아내지만, 남편 리오(채닝 테이텀)를 만나기 이전까지만 회복한다. 남편은 아내를 집으로 데려와 기억을 되살리려 하지만, 아내는 몇년간 발길을 끊었던 가족에게 돌아가려 하며 정말 남편인지 의심스러운 남자를 밀쳐낸다. 아내 앞에 옛 애인까지 나타나면서 남편의 속엔 멍이 든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당신이 나의 끝 사랑이며, 어떤 장애물이 오더라도, 당신에게 돌아갈 길을 찾아가겠다”던 결혼서약처럼, 남편은 ‘나’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지운 아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결국 기억을 복원한 사랑의 기적이 아니라, 다시 처음처럼 찾아온 이들의 두번째 설렘이 사랑으로 맺어질지에 주목한다. 영화는 가족과 화목했던 시절까지만 기억하던 아내가 왜 가족의 품을 박차고 나와 지금의 남편까지 만나게 됐는지에 대한 진짜 사연이 공개되면서, 오히려 극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남긴다. 실화라면, 둘은 어떻게 됐을까? 두 남녀의 현재가 영화 끝에 소개된다. 수입·배급사는 전략적으로 연인들이 사탕을 주고받는다는 ‘화이트데이’(14일)를 개봉일로 잡았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소니픽쳐스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 바보야 문제는 만화가 아니야
■ ‘금갈치·시금치’ 서민들, 장보기 겁난다
■ “구럼비 바위 가치 없다? 잘못된 보고서 때문”
■ 비타민제 복용할수록 ‘독’
■ ‘자동차면허로 오토바이 몬다’는 옛말
침묵·절제 속 감동적 일상 <달팽이의 별>(감독 이승준)은 시청각중복장애를 가진 영찬씨와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순호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어렸을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시청각장애인이 된 영찬씨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대신 섬세한 마음의 감각을 지닌 남자다. 아내 순호씨는 성인 남성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를 가졌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여자다. 외모는 많이 다르지만 이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조화롭고, 매력적인 커플이다. 영화를 보며 두 사람의 모습에 매혹된 순간은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였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영찬씨이기에, 그들의 대화엔 언제나 촉각이 사용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등 쪽 손가락에 각자의 손끝을 톡톡 찍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인 ‘점화’(點話)를 통해 대화한다. 카메라는 서로의 손 위에 올려진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사람의 손가락을 오래도록 비춘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에 두 사람은 서로 끊임없이 반응한다. 그 모습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마치 두 마리의 달팽이가 각자의 더듬이로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교감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오로지 손가락의 촉각으로만 교감하는 모습은 그 어떤 사랑의 몸짓보다 농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구는 승차감이 없는 기차와 같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아침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으로 여행을 한다”며, 영찬씨는 종종 자신이 느끼는 세상을 짤막한 시구절로 표현하곤 한다. 답답함과 불편함에 둘러싸여 있지만, 영화를 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부부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산책을 하고, 나무를 만지고, 형광등을 교체하는 모습을 보며, 잠들어 있던 ‘마음의 감각’이 새싹처럼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자잘한 일상이 그토록 아름다운 순간이었던가, 하는 느낌.
민용근 영화감독
| |
영화 ‘해로’
인생·사람 소중함 일깨워 영화 속에서 잠을 못 이루던, 아내가 말한다. “당신 먼저 죽지 마. 당신 없이 혼자 어떻게 살아? 아니야. 당신이 먼저 죽는 게 좋겠어. 내가 일주일만 더 살다 죽을게. 당신 잘 보내야지. 그것도 안 되겠다. 당신 죽는 거 어떻게 봐?”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제 노부부는 집에 둘만 남았다. 남편이 먼저 심장마비의 위기를 넘기고 삶을 더 붙들려 할 때, 이번엔 아내에게 췌장암이 덮친다. 영화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예상하듯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와, 아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렇게 아내를 혼자 떠나보내야 하는 건지 고통스러워하는 남편, 두 부부의 황혼녘 사랑얘기다. <해로>(감독 최종태)는 병마 앞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 죽음을 고민하는 노부부를 비추면서, 당신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동행할 사람이 누구인지 물으며, 그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언제든 한번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며,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행복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베테랑 연기자 주현(남편), 연극배우 예수정(아내)의 연기적 깊이가 어떠한가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 빠른 속도의 극에 익숙한 관객에게 잔잔한 <해로>는 꽤나 더딘 흐름의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까지 관객을 끌고가는 힘은 두 사람의 연기호흡에서 상당부분 나온다. 연예인들이 종종 오락프로그램 등에서 ‘주현 코믹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는데, 주현은 이 영화에서 그런 잔상을 말끔히 씻는다. 예수정은 죽음과 남편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슬픔과 기쁨의 복합된 느낌을 얼굴에 담아낸다. 부부가 꽃이 가득한 방 안에서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껴둔 눈물을 짓게 한다. 핀란드 타우노 일리루시 작가의 소설 <핸드 인 핸드>를 원작으로 삼았다. 송호진 기자, 사진 고유FN 제공
영화 ‘서약’
두번째 사랑 꿈꾸는 남편 사랑의 기억을 공유하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그 기억을 잊는다. 남편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기억의 상실. 어디서 많이 본 그렇고 그런 얘기이다 싶지만, 할리우드 영화 <서약>(감독 마이클 수시)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데서 그 진부함을 어느 정도 털어낸다. 아내 페이지(레이철 매캐덤스)는 기억을 찾아내지만, 남편 리오(채닝 테이텀)를 만나기 이전까지만 회복한다. 남편은 아내를 집으로 데려와 기억을 되살리려 하지만, 아내는 몇년간 발길을 끊었던 가족에게 돌아가려 하며 정말 남편인지 의심스러운 남자를 밀쳐낸다. 아내 앞에 옛 애인까지 나타나면서 남편의 속엔 멍이 든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당신이 나의 끝 사랑이며, 어떤 장애물이 오더라도, 당신에게 돌아갈 길을 찾아가겠다”던 결혼서약처럼, 남편은 ‘나’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지운 아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결국 기억을 복원한 사랑의 기적이 아니라, 다시 처음처럼 찾아온 이들의 두번째 설렘이 사랑으로 맺어질지에 주목한다. 영화는 가족과 화목했던 시절까지만 기억하던 아내가 왜 가족의 품을 박차고 나와 지금의 남편까지 만나게 됐는지에 대한 진짜 사연이 공개되면서, 오히려 극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남긴다. 실화라면, 둘은 어떻게 됐을까? 두 남녀의 현재가 영화 끝에 소개된다. 수입·배급사는 전략적으로 연인들이 사탕을 주고받는다는 ‘화이트데이’(14일)를 개봉일로 잡았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소니픽쳐스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 바보야 문제는 만화가 아니야
■ ‘금갈치·시금치’ 서민들, 장보기 겁난다
■ “구럼비 바위 가치 없다? 잘못된 보고서 때문”
■ 비타민제 복용할수록 ‘독’
■ ‘자동차면허로 오토바이 몬다’는 옛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