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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세월 가도 떠오르는 첫사랑…궁금하지 않나요?”

등록 2012-03-18 17:19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42) 감독을 16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3년부터 영화를 준비한 이 감독은 “대학생 서연을 연기하는 수지씨가 2003년엔 9살이었다.(웃음) 영화에 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며 10년 동안 애정으로 다듬어 온 영화를 내놓는 소감을 담담히 말했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42) 감독을 16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3년부터 영화를 준비한 이 감독은 “대학생 서연을 연기하는 수지씨가 2003년엔 9살이었다.(웃음) 영화에 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며 10년 동안 애정으로 다듬어 온 영화를 내놓는 소감을 담담히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건축과 첫사랑 버무린 멜로
1만개의 신 쓰며 오랜 준비
“작품 접으라는 말 많았지만
10년 동안 포기할 수 없었다”
“궁금한 사람 없으세요?”

대학 시절 첫사랑에게 영문도 모른 채 ‘꺼져 줄래’란 말을 듣고 우두커니 멈췄던 서연. 왜 15년 만에 다시 나타났을까? 2003년 봄 시나리오 초고를 쓰기 시작한 뒤 햇수로 10년 동안 영화 <건축학개론>을 벼려 온 이용주(42) 감독은 “궁금해서가 정답인 것 같아요.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잖아요. 당시엔 아팠지만 시간이 지났으니 찾는 것도 가능했던 거죠”라면서 영화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22일 개봉하는 <건축학개론>은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첫사랑을 만나서 다시 시작하자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현재의 자리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정리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꼭 ‘처음’이 아니어도, 지나버려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순간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담담히 내려놓는 건 어떨까요’라고 영화는 눈짓한다.

대학교 1학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가까워졌다가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확인하지 못하고 멀어진 두 남녀가 15년 만에 다시 만난다. 건축가인 승민(엄태웅) 앞에 불쑥 나타난 서연(한가인)은 제주도 고향집을 새로 지어달라고 한다. 현재 두 사람에 대학생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이 수시로 교차되는 동안, 영화 촬영 기간에 실제로 지어진 제주도 서연의 집도 점차 완성된다. 정릉 토박이 승민과 정릉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서연의 동네는 감독 말대로라면 “영화에 나오는 710번 버스를 포함해 유난히 버스 종점이 많은, 도시의 끝과 같은” 마을로 꼼꼼히 묘사된다. 한편에선 ‘압서방(압구정, 서초동, 방배동의 줄임)파’ 재욱(유연석)의 강남 집이 그와 대비돼 그려진다. 승민의 사무실과 차곡차곡 지어지는 제주도의 집은 영화 속 현재의 주요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의 두 이야기를 묶을 것, 과거는 도시에 대해 거시적으로 접근하고 현재는 주택이란 한정된 공간을 미시적으로 바라볼 것, 남자는 오래 정착해 있다가 떠날 준비를 하고 여자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정착을 꿈꿀 것.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콘셉트예요.”

이 감독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4년 동안 건축사무소에 다녔다. ‘시네필’은 아니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저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곤 했다. 1999년 직장을 다니면서 한겨레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며 처음 16㎜카메라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건축을 하면서 행복할 자신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2001년 “스틱 운전 실력 덕택에” 영화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뽑혀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살인의 추억>이 마무리된 2003년 초 <건축학개론>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한다. “2년 동안 550만원을 받고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카드빚 700만원을 졌고, 38살이 될 때까지 한달에 50만원으로” 살기도 했다. 그러다 <건축학개론>을 잠시 내려놓고 2009년 첫 장편 <불신지옥>을 만들면서 카드빚을 갚았고 집에서 독립했다. “어머니에게 손 벌리면 안 된다는 강박과 독립에 대한 부채감”은 영화 속에서 서글프게 묘사되는 승민과 어머니의 관계에 묻어난다. “승민이 식당에서 국밥 파는 어머니에게 ‘2만원 판 게 자랑이냐’고 소리지르고 대문을 뻥 차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비슷했어요.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운데 어머니가 ‘이번 달 전화비가 얼마 나왔는지 아냐’라고 잔소리하면 짜증내고.(웃음) 첫사랑 중이던 그 시절, 비겁하고 부끄러웠던 20대를 중간정리한다는 마음으로 30대에 썼죠. 40대에 찍게 됐네요.(웃음)”

2003년 컴퓨터에 ‘건축학개론’ 폴더를 만든 이후 2011년까지 ‘1만개의 신’을 썼다. 보통 한 영화 신 개수의 100배다. 캐스팅 단계에서 여러 번 엎어지고, 그만 접으라는 말을 주변에서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이 영화를 놓을 수가 없었단다. 영화의 시점은 1991년에서 94년까지 90년대 초반을 맴돌다 96년으로 확정됐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제곡도 여러 번 바뀌었다. “아바나 어떤 날의 노래를 쓰려고도 했어요. 96년으로 바뀌면서 94년도에 나온 ‘기억의 습작’을 쓰게 됐고요.” 2010년 지금의 제작사인 명필름을 만나기 이전에 제작사들을 돌아다니면서 ‘이러면 흥행이 안 된다’며 두 사람이 맺어지는 해피엔딩을 요구받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틀렸나’라고 머뭇거리면서도 결말을 바꾸지 않은 감독의 선택과, ‘멜로영화 같지 않은 제목이 오히려 좋다’던 명필름의 혜안이 만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두드리는, 아름다운 영화가 완성됐다. “전국 관객이 25만이었어요. 실패했죠.” 평단의 찬사를 받은 <불신지옥>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건축학개론> 시사회 이후 나온 한결같은 칭찬에도 기대보단 긴장이 앞선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의 걱정과 달리, 이번 영화는 제법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계기를 선물할지도 모른다. <건축학개론>엔 누군가에겐 해묵은 미련을 털어내도록 돕고, 또 누군가에겐 새날을 마주할 용기를 심어 줄 가능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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