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미(왼쪽), 김소연(오른쪽)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이광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맨스 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는 독특한 이야기 패턴으로 전개되는 영화이다. 등장인물들이 풀어놓는 각자의 이야기가 일정한 공통분모를 갖고 겹쳐지며 나중에는 뭐가 진짜 일어난 일이고 지어낸 얘기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영화가 끝나면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게 만든다. 물론 이런 시도가 하늘 아래 처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광국 감독은 그걸 다분히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와 일상생활의 소묘와 섞어놓는다. 이렇게 되니까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갖고 있는 환상이 병렬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다 그들의 삶의 일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삶과 현실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나와 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서 삶의 자양분을 새로 공급받는 듯한 유쾌함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깜짝 놀란 것은 다방 레지로 출연한 배우 신동미(왼쪽)의 존재감이었다.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처럼 그녀는 영화 속에서 주요 이야기를 풀어내고 섞는 중요한 매개자로 나온다. 속된 이미지의 친근감을 풍기며 다른 영화에서도 곧잘 볼 수 있는 ‘생활연기’를 펼치는데 관객을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내레이터로 잘 어울렸다. 뭔가 신기한 얘기를 주워들은 듯한 여자의 맹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주기도 하며 천방지축 속되고 경쾌한 속물처럼 보이다가도,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성숙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존재감이 인상적이었는데 언론에서 별로 주목을 하지 않아서 또 놀랐다. 그녀의 전작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내가 보지 못했던 영화와 드라마들에 조·단역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었다. 자신의 에너지를 잘 보존하고 관리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기치 않게 놀랐던 또다른 배우는 <가비>의 김소연(오른쪽)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라는 건 알았으나 한 번도 그녀가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라고는, 실례지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역으로 나온 <가비>에서 그녀는 별다른 특징 없는 깔끔하고 심심한 미모의 소유자라는, 기왕에 갖고 있던 내 선입견을 부수었다. 심심하게 예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보였을 뿐이고 그 이상 뭔가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느껴졌다. 정작 <가비>라는 영화 자체는 그녀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장윤현 감독은 비극적 영웅으로서 고종의 면모에 진력한 나머지 애초 주인공이었던 그녀를 중반 이후 슬쩍 옆으로 밀어놓는다. 러시아에서 조선으로 와 고종의 궁녀가 되어 한복을 입으면서부터 그녀가 보여줄 것 같았던 다른 기운은 심하게 누그러든다. 거대 담론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빛나는 자주적 요소를 간직한 독립적 여성상이 나라의 명운을 근심하는 왕에 동조하는 전통적 여성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몇몇 장면에서는 좋았다. 이를테면 자신에 대한 평판을 묻는 왕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악평을 전달해주는, 별다른 연기가 없는 평범한 장면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좋았다. 이런 것이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그녀는 작품 운이 없었거나 작품을 고르는 눈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감상을 적다 보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배우의 예술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연기력 운운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우의 활달한 기운이다. 신동미와 김소연은 그런 기운을 갖고 있는 배우로 내게 보였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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