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가운데) 감독이 지난해 촬영장에서 배우 주진모, 김소연과 함께한 모습. 시네마서비스 제공
‘가비’ 장윤현 감독
장윤현(45) 감독은 앉자마자 진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영화작업할 땐 하루에 커피 10잔도 마신다”는 그는 1990년대 초반 헝가리 영화유학 시절부터 커피에 매료됐다.
최근 커피 에세이도 출간한 그에게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내용을 담은 김탁환의 원작소설 <노서아 가비>는 꽤 흥미를 자극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커피 마시는 장면을 찍으면 시각적으로 묘할 것 같았다”는 그는 고종에도 점차 빠져들었다.
“공부할수록 패망하는 나라의 왕으로서 유약하다고 여겼던 고종에 대한 오해가 부끄러웠어요.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조선의 비전과 백성의 삶을 고민한 왕이자 독서광이었고, 최고 지성인이었죠. 고종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꼭 만들자 결심했죠. ”
영화화는 쉽지 않았다. 2007년부터 같이 준비한 투자사가 2년 만에 손을 털기도 했다. “구한말 역사와 고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투자사 쪽에선 “고종을 빼고 원작처럼 구한말 남녀의 사랑에 집중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영화화가 더뎌지자, 2007년 김 작가와 맺은 3년 판권계약까지 더 연장해야 했다.
15일 개봉한 <가비>(커피의 고어식 발음)는 이런 우여곡절의 산물이다. 감독이 포기할 수 없었던 고종(박희순)의 고뇌와, 상업자본이 원한 일리치(주진모)·따냐(김소연)의 극적인 사랑이 어울린 작품이다. 감독은 그 절충점을 찾기 위해 시나리오를 180여회나 고쳤다. <가비>는 고종을 죽이려는 일본의 커피 독살작전에 빨려들어간 두 남녀, 고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3일 서울 시내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영화사극이라면 에로나 코미디가 가미된 장르로 보는 인식 속에서, 역사적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니까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떠올렸다. 그는 “고종에 대한 커피 독살 시도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다.
“멋있는 남자로 나오는 작품의 종결판”으로 여기고 연기했다는 배우 주진모는 캐릭터, 시나리오 수정에 상당 부분 참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원작에선 일리치가 첩보원으로 몰래 움직이는데, 진모가 ‘사랑하는 따냐가 고종을 만나 흔들리면 일리치가 왕을 만나보고 싶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왕과 만나려면 일리치를 일본군 장교로 격상시켜야 했고 그러면서 ‘고종과 일본’이란 갈등, 그 사이에 선 따냐의 갈등도 훨씬 커지더군요.”
애초 캐스팅한 이다해가 하차한 뒤 영화가 엎어질 위기에서 합류한 김소연은 최근 <개그콘서트>의 코너 ‘꺾기도’까지 출연해 영화를 알렸다. 장 감독은 “짠하면서 고맙기도 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명분과 대의의 길을 가고 싶어한 남자(고종)의 욕망과 리더로서의 진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한 남자(일리치)의 마음 등에 관객들도 동질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가비>는 소재가 특이하지만 로맨스, 첩보 액션, 고종의 번뇌 등이 매끄럽게 섞이지 못해 이야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아쉬움도 남긴다. <접속> <텔미썸딩> 등을 연출한 장 감독은 <황진이>(2007) 흥행실패 탓에 순제작비 52억원이 들어간 <가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
“커피는 불안할 때 심리치료제 역할도 한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최근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좀더 늘었다고 털어놨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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