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토요판] [TV +] 김성윤의 덕후감
생물학적 성장에 비해 사회적 성장 속도가 더딘 편인 나는 1990년대가 바로 엊그제 같다. 그래도 <건축학개론>을 보니 아련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아, 90년대는 이제 회고해야 할 과거가 되었구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원래 20대 시절의 기억이란 그런 건가. 우리야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촌스럽다고 여겼지만, 막상 그 시절에 청춘을 보냈던 당신들은 그 시간이 바로 어제 같은 건가. 반면 2010년대의 후배들은 90년대를 촌스럽다 여길 텐데. 오만가지 생각으로 어떤 덕후감을 끄적거려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는 특별히 ‘촌스런’ 떡볶이 코트를 갖춰 입고 털레털레 극장을 찾았다. 아마도 맘껏 울 준비를 했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엄태웅이 속상한 마음에 맨손으로 대문을 고치려 쿵쾅거리자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이 그렇게 답답했던 걸까.
영화는 1996년 가을 학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름엔 이른바 연대 사태가 터졌고 학생운동의 명암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운동 진영 내에서의 학생운동 헤게모니는 물론이거니와, 운동 자체의 헤게모니가 상실되던 시기였다. 두 전직 대통령도 구속된 마당이었던지라, 젊은이들은 표적을 잃어버렸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어리석었던 우리들은 유독 <상실의 시대>를 좋아라 했던 것 같다.
반면 세상은 외환위기 직전. 풍요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일컬어 신세대의 계보를 잇는 X세대라 했다. 미래의 가능성을 감히 점칠 수 없는 미지수, 우리는 그 부름을 즐겼다.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소비의 주체가 되어 또다른 의미에서 세상의 주역이 됐던 것이다.
어떤 언어로도 규정되기 힘든 1996년 가을이란 시간 동안, 청년들이 연애에 몰두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 있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동경하고 그 때문에 순수하게 아파하는 마음은 회고적으로 각색될지언정 당시 청년세대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집합적 도덕률이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우리는 (영화가 회고하듯) 개포동 혹은 ‘압서방’과 심리적 거리를 두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지배되어 점점 더 찌질해질 수밖에 없었다.
<건축학개론>은 역사의 바로 이 진공 상태를 시대적 자양분으로 삼았다. 물론 영화는 이런 역사를 단 한 올도 건드리지 않는다. 어쩌면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30대 초식남들로 하여금 ‘자뻑’에 빠지게 하는 그저 마취제 같은 영화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통한 주체 못할 환호와 절규, 그리고 과거에 대한 상상적 치유만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빠져 한없는 향수에 젖다가도, 지난 과거에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현재를 다독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퍼뜩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시절을 객관화해서 나는 그때로부터 성장했구나 하고 자위하는 순간, 바로 ‘그’ 나는 파멸로 치닫는 역사의 중심에서 여전한 정치적 분열증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199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많은 것이 변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몇 년 사이에 휴대용 디스크 용량은 몇 십 기가바이트가 됐고, 음악은 주로 디지털 음원으로 감상되고, 버스 노선번호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지만 앞선 시대의 모든 것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X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 이래로 우리는 무언가 되찾기라도 한 걸까. 우리는 과연 성장한 걸까. 회상으로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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