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도
새 생명탄생을 우한 ‘남극 신사’ 들의 여행
남극대륙. 1400㎢의 넓이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한 대륙이지만, 최저기온이 영하 90도에 육박하고 시속 150㎞에 이르는 강풍이 몰아치는 등 ‘최악’의 자연조건은 이곳에 웬만한 생명체는 발붙일 수 없는 ‘저주의 땅’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을 붙여줬다. 이런 남극을 보금자리 삼아 사는 대표적인 생명체가 바로 펭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펭귄은 남극의 추위와 강풍이 전혀 괴롭지 않은 걸까? <펭귄-위대한 모험>은 남극에 사는 펭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런데 ‘동물의 왕국’으로 대표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물과는 좀 다르다. 처음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물을 제작하기로 하고 촬영에 들어간 프랑스의 뤽 자케 감독과 스태프들은 펭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극장용 장편영화로 방향을 틀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가까이서 지켜본 펭귄들의 삶이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이고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그리고는 펭귄이라는 ‘배우’를 두고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남극의 짧은 여름이 지나고 기나긴 겨울에 접어들면 ‘남극의 신사’ 황제펭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집단서식지 ‘오모크’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물 속에서는 물고기 못지 않은 수영 솜씨를 뽐내는 이들이지만, 1m가 조금 넘는 키에 비해 너무도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기에 뭍에서는 1시간에 500m밖에 가지 못한다. 한 줄로 늘어선 펭귄들이 뒤뚱거리며 천천히 나아가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묵직한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한다. 오모크에 당도한 펭귄들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작은 예비 생명체의 가장 큰 천적은 추위라는 괴물이다. 알을 품다가 실수로 얼음바닥에 흘리기라도 하면 금세 추위가 낼름 삼켜버린다. 이렇게 얼어서 쩍 갈라진 알은 부모 펭귄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어머니와 아버지 펭귄은 먹지도 못한 채 교대로 알을 품는다. 추위는 펭귄들에게도 가장 큰 두려움이다. 몰아치는 눈보라를 버텨내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서로 최대한 밀착한 이들의 모습에선 괴로워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다. 몇몇 펭귄들은 끝내 추위에 잡아먹힌다. 새끼들이 태어나고 겨울이 끝나면 이들은 다시 양식의 보고인 바다로 돌아간다. 새끼들은 4년 뒤 이곳 오모크로 다시 돌아와 생명의 산고를 치를 것이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해설을 맡고, 성우 배한성·송도순과 아역배우 박지빈이 목소리로 펭귄의 속마음을 연기해 재미를 준다. 지극히 도회적이면서도 펭귄들의 삶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음악도 인상적이다. 남극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관객들의 눈을 시원하게 하겠지만, 부모 펭귄들의 내리사랑에 가슴은 따뜻해질 것 같다. 8월4일 개봉. 사진 영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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