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의 얼굴을 본뜬 실리콘 조각을 얼굴에 붙인 뒤, 삭발한 머리에 흰머리와 눈썹·검버섯·주름 등을 심거나 그려 칠순 노인 이적요를 만드는 모습.(가운데) 분장팀 4명이 8시간 달라붙어 완성한다.
영화 ‘은교’ 송종희 분장감독
매력적 ‘70살 시인’ 만들려
얼굴에 실리콘작업 비지땀
“박해일 인내심 존경스러워” 성형 안한 김고은 신선함
“보자마자 확 빠져들었다” 관객은 영화 <은교>에서 ‘두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랑, 이젠 잡을 수 없는 젊음을 열망하는 이적요(박해일). 70살 노시인을 청춘과 욕망을 향한 ‘서글픈 로맨스’에 빠뜨리는 17살 싱그러운 은교(김고은). 영화분장 19년 경력의 송종희(43) 분장감독은 35살 박해일을 칠순 노인으로 바꿔놓았고, 영화 데뷔를 치르는 신인 김고은(21)의 민낯을 매만졌다. 흥행영화에서 전도연·이영애·김혜수·송강호 등의 얼굴을 만진 송 감독이 ‘박해일과 이적요’, ‘김고은과 은교’의 얼굴을 얘기했다. 19일 만난 그는 “감독도, 나도, 스태프들도 성형 배우의 얼굴에 지쳐있을 때, 그렇지 않은 고은이를 처음 보자마자 확 빠져들었다”고 했다. 정지우 감독이 특수분장으로 박해일을 노인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을 땐, 대뜸 “미친 짓”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미친 짓이요?
“노인 특수분장의 국내 기술력이 검증된 바 없고, 배우가 연기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해피엔드>(1999)에서 같이 작업한 정 감독님이 ‘박해일이 특수분장으로 이적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속일 수 있다면, 성공적일 것’이라고 한 말을 용감한 선택이라 보고, 지지하게 됐죠.”
-어떤 이적요의 얼굴을 만들려고 했나요?
“감독은 섹시한 노인을 주문했고, 저는 그걸 매력적인 노인으로 이해했죠. 어려 보이는 동안의 해일씨가 70살이 됐을 때를 가정해,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게 했어요. 서울 탑골공원에 20일 넘게 상주하며 어르신들과 얘기했는데, 중산층 이상으로 평탄한 삶을 산 분들의 얼굴이 좀 젊게 보였어요. 국민시인으로 살아온 이적요의 이마와 미간에 주름을 줘 강직함을 나타내면서도, 턱 부분을 처지지 않게 만들어 건강하고 젊게 보이도록 한 거죠. 해일씨 눈썹이 얇고 숱이 많은데, 이적요는 그 눈썹의 50% 정도를 유지시켰죠. 해일씨도 ‘내가 이적요처럼 늙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한번 특수분장할 때 꼬박 8시간이 걸렸다던데요?
“피부의 질감과 비슷한 실리콘 재질을 얼굴에 붙이는 노인 특수분장은 국내 최초로 해봤어요. <은교>는 내면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니까, 얼굴 움직임이 제한받지 않도록 실리콘 조각을 이마, 양 볼 등 세 조각으로 나눠 붙였어요. 해일씨가 10여회 테스트촬영을 포함해 60회 넘는 특수분장 촬영 때마다 매번 8시간 이상 분장을 받으며 견뎌낸 거죠. 분장을 해체하는 데도 2시간이 걸렸고요. 오전 9시부터 촬영이라면, 해일씨는 준비운동하고 전날 밤 11~12시부터 분장을 시작하는 거죠. 그 인내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어요.”
-이적요는 은교 때문에 생기도 찾고, 절망에도 빠지는 복합적 얼굴을 드러내야 했죠?
“이적요가 은교를 처음 보고 삶의 권태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에선, 피부톤과 검버섯의 농도도 좀 밝게 하고, 머릿결에 광택도 주고, 눈썹 모양도 활동력 있게 올려줬어요. 뭘 건드렸는지 관객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변화를 준 거죠. 후반부에선 늙음을 인지하면서 피폐해지는 이적요를 표현하기 위해 눈밑에 음영을 주고, 머리칼도 희게 만들어 에너지가 빠진 느낌을 줬고, 희망을 잃은 건조하고 거친 질감의 얼굴을 만들었죠.”
-영화 초반엔 (노쇠해진 이적요의 성기 등) 박해일의 전라도 나오던데요?
“가슴 위로는 해일씨 몸이고, 그 아래는 대역한 노인분의 몸이에요. 해일씨 가슴이 반질반질해서 두 몸의 피부톤을 맞춰 분장한 뒤 합성했죠.”
-특수분장과 해일씨의 연기가 잘 어우러진 장면이 있던가요?
“이적요가 소설가 제자인 서지우(김무열)와 (애증·증오·질시 등이 뒤섞여) 몸싸움을 할 때 콧물까지 흘리는 이적요의 눈주름에서 새어나오는 ‘격한 노기’를 봤어요. 자기의 허리춤에 들어와 자는 은교를 호기심에 찬 얼굴로 보는 이적요의 눈도 인상적이었고요. 그 장면의 연기에선 섬뜩했죠. 해일씨는 분장이 끝나면 촬영현장으로 가지 않고 10~20분 정도 머물며 이적요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꼭 가졌죠.”
-300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은 고은씨를 본 느낌은 어땠나요?
“날것의 싱싱함을 볼 때 밀려오는 희열감이 있었어요. 소설을 읽을 때 은교는 풍족하지 못해, 뭔가 채워지지 않은 소녀였다면, 고은이는 싱싱하면서 귀한 느낌도 묻어났죠. 전혀 성형하지 않은 얼굴을 대하니까 저도 확 빠져든 거예요. 요즘 여배우들과 전혀 다른 느낌의 여배우가 등장한 것 같아요.”
-<올드보이> 최민식의 갈기머리, <친절한 금자씨> 이영애의 빨간색 화장 등 작품과 합치되는 인물을 만들어냈는데, 은교는 어떤 소녀로 만들고 싶었나요?
“신선하고 밝지만 방치된 느낌의 은교가 목표였어요. 원래 고은이가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정형화된 단발이나 예쁜 커트가 아니라 손질되지 않은 커트머리가 좀 자란 것 같은 방치된 단발머리 스타일을 만들었죠. 고은이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건드리지 않은 선에서 그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메이크업을 해줬고요.”
-<접속> <해피엔드> 등 전도연씨와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일부에선 고은씨를 두고 ‘제2의 전도연’이란 수식어를 붙여주고 있어요.
“전도연은 (작품 내용과 감독의 요구 등에) 설득되면 자신의 120%를 던져서 (관객을) 설득시키는 배우예요. 고은이는 어리지만, 연기 태도에서 그런 모습이 보였어요. 깨끗하면서도 다양한 얼굴을 그릴 수 있는 백지, 여백의 얼굴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전도연씨와 비슷해요.”
17살 여고생에 대한 노시인의 욕망이란 설정이 불편한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은교가 서지우와 정사를 벌이며 “여고생이 왜 남자와 자는지 알아? 외로워서”란 대사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박해일의 묵직한 톤의 노인 목소리도 호불호가 갈릴 듯싶다. 그럼에도 26일 개봉하는 <은교>는 손에 쥐지 못한 것을 갈망하고 질시하는 세 인물의 심리를 포착해 잘 버무려낸 서글픈 영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휴학중인 김고은은 그 갈망을 일순간에 발화시키는 은교의 매력을 데뷔작에서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정지우필름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인기기사>
■ ‘논문 표절’ 문대성 탈당으로 새누리 과반 무너져
■ 귀신처럼 사라진 ’한국계 귀신고래’
■ 취재는 안하고 한우 파는 기자들…사연은?
■ 선거 떨어지면 ‘백수’ 되나요? 뭘 먹고 사나요?
■ 살아남은 실험견의 슬픔
얼굴에 실리콘작업 비지땀
“박해일 인내심 존경스러워” 성형 안한 김고은 신선함
“보자마자 확 빠져들었다” 관객은 영화 <은교>에서 ‘두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랑, 이젠 잡을 수 없는 젊음을 열망하는 이적요(박해일). 70살 노시인을 청춘과 욕망을 향한 ‘서글픈 로맨스’에 빠뜨리는 17살 싱그러운 은교(김고은). 영화분장 19년 경력의 송종희(43) 분장감독은 35살 박해일을 칠순 노인으로 바꿔놓았고, 영화 데뷔를 치르는 신인 김고은(21)의 민낯을 매만졌다. 흥행영화에서 전도연·이영애·김혜수·송강호 등의 얼굴을 만진 송 감독이 ‘박해일과 이적요’, ‘김고은과 은교’의 얼굴을 얘기했다. 19일 만난 그는 “감독도, 나도, 스태프들도 성형 배우의 얼굴에 지쳐있을 때, 그렇지 않은 고은이를 처음 보자마자 확 빠져들었다”고 했다. 정지우 감독이 특수분장으로 박해일을 노인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을 땐, 대뜸 “미친 짓”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송종희(43) 분장감독
김고은(21)
■ ‘논문 표절’ 문대성 탈당으로 새누리 과반 무너져
■ 귀신처럼 사라진 ’한국계 귀신고래’
■ 취재는 안하고 한우 파는 기자들…사연은?
■ 선거 떨어지면 ‘백수’ 되나요? 뭘 먹고 사나요?
■ 살아남은 실험견의 슬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