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
‘미스터 K’ 하차한 이명세 감독
“초반에 일방적인 촬영중단
시시콜콜 검열받아야 하나”
100억 들이는 투자·제작사
“내러티브 없고 이미지뿐”
“초반에 일방적인 촬영중단
시시콜콜 검열받아야 하나”
100억 들이는 투자·제작사
“내러티브 없고 이미지뿐”
총제작비 100억여원의 첩보 액션영화 <미스터 케이(K)>로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명세(55) 감독은 ‘해고 감독’이 됐다. 시제이(CJ)의 메인투자를 받은 제작사 ‘제이케이(JK)필름’이 지난 6일 촬영 중단을 통보한 뒤, 24일 감독 교체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초반 촬영편집본을 본 시제이와 제작사가 “내러티브(이야기)는 없고, 이미지만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억지스럽다”며 감독 해고의 강수를 뒀다. 투자자를 설득해 이명세 감독에게 연출권을 안겼던 제이케이필름 공동대표인 윤제균 감독은 지난 6일 이 감독에게 “올드하고 유치하고 동화 같은 감성으론 관객을 잡을 수 없다”는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25일 사무실로 쓰는 서울 시내 아파트에서 만난 이 감독은 우선 약속한 시나리오 대로 찍지 않았다는 오해부터 풀고 싶어했다. 그는 “후배 감독들이 이명세도 잘리는데, 우린 어떻게 하냐고 걱정한다”며 “(연출권이) 시시콜콜 검열받는다면, 감독이 왜 필요하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시제이와 제이케이필름에게 보낸 초반 촬영편집본도 보여줬다. 땅에 떨어진 선글라스 안경에 설경구 등이 비치는 장면에선 흑백으로 처리하는 등 감각적인 화면들이 등장한다. 자동차 장난감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길 위를 달리는 장면을 사실감 있게 찍는 등 예산절감을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어떻게 촬영이 중단됐죠?
“타이(태국)에서 6회차를 촬영한 뒤, 한국에서 5회차를 찍는데, 6일 윤제균 감독이‘촬영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고 연락해 와서 다음날 아침에 만나 얘기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6일 감독인 나랑 상의도 없이 스태프들에게 일방적으로 촬영중단을 통보했죠. 그래도 7일 새벽 1시까지 찍고 중단했습니다.”
-감독이 합의된 시나리오 대로 찍지 않는 등 제작사와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사 없이 이미지 중심으로 촬영했다는 거죠.
“시제이의 투자심사를 통과한 시나리오가 순제작비 최소 100억원이 드는 내용이니까, 예산규모를 (순제작비 72억원 정도로) 줄인 현장 촬영대본을 제작사와 다 합의해 책자로 만들어서 그걸 토대로 찍은 겁니다. 타이 촬영 때는 윤제균 감독이랑 시제이 관계자도 있었어요. 타이에선 짧은 시간에 급히 찍은 거니까, 부족한 부분은 한국 가서 보충촬영을 하자는 얘기도 서로 나눴고요. 내가 몰래 찍은 게 아닙니다. 물론 대사들도 다 촬영했지만, 시제이와 제이케이필름에게 (참고용으로) 건넨 (21분여짜리) 초반 편집본엔 보기 좋으라고 일부 감정이 튀는 대사는 뺀 부분이 있고, 대사가 어색한 장면은 후시녹음으로 나중에 보충하자고 배우(설경구·문소리)들과도 얘기된 부분입니다. 내가 무슨 무성영화를 찍었나요. 그리고 영화는 현장의 변수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예술입니다. 드라마가 없다? 한국 촬영분은 이제 겨우 5회차를 찍었습니다. (상영시간 2시간여) 영화에 실제로 쓸 분량을 6~7분 정도밖에 촬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감독이 의견을 절충하지 않고 고집 부린다, 협의 없이 잠수를 탔다 등의 얘기까지 흘러나왔어요. 촬영 중단이 통보된 날 감독이 변호사까지 촬영장에 데리고 왔다는 말도 있고요.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부른 변호사가 아니라, 아는 변호사인데 인하대 특강을 가다가 그냥 촬영장에 들른 겁니다. 아는 변호사이니 (현 사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한 것 뿐입니다.
제이케이필름 쪽에서 중재자를 내세워 나보고 ‘윤제균 감독이 너무 힘들어한다. 이 영화를 들고 다른 투자·제작사한테 가서 찍든지, 명분과 실리를 찾아 떠나든지 하라’고 해서, 다른 투자처를 직접 찾아보기도 했어요. 2년간 매달린 작품인데, 왜 이 영화를 안하고 싶겠습니까? 윤 감독이 ‘모든 것에서 협상은 잘 하지만, 아내와는 협상이 잘 안되는 남자’란 아이디어를 냈을 때, 제가 한국판 007시리즈 같은 지금 영화의 원안 아이디어를 내서 시나리오가 진행됐으니까요.
제이케이필름과 합의해서 수정해 만든 현장 촬영대본이 아니라 시제이 투자심사를 통과했을 때의 시나리오 대로 찍든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고 해서, 지난 17일에 그럼 액션은 내가 찍고, 코미디는 윤제균 감독이 찍으라는 제안도 했어요. 나로선 무릎을 꿇는 최고의 양보였죠.”
-비주얼만 신경 쓴다느니 최근 작품에서 흥행하지 못했다느니 우려가 있다가, 초반 편집본을 보고 해고시점을 찾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비주얼? 그림·풍경만 좋은 게 비주얼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내용과 고민이 압축된 이야기가 비주얼인 거죠.”
-상업자본과, 상업자본의 투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제작사가 연출권과 감독의 창의성에 간섭했다는 의견과, 100억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촬영내용을 초반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내 돈도 아니고, 큰 돈이 들어가니까, 의견을 같이 나눠보자고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해요. 1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라도, 협의할 건 해야죠. 그런데 감독 교체와 해고설부터 언급한 것 아닙니까? 선배 감독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봅니다. 6일 촬영중단을 통보한 뒤, 스태프들을 하나둘 불러서 ‘감독을 교체할 거다. 계속 이 영화를 할 거냐, 말 거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나를 믿고 함께 이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촬영 초반에 감독이 해고되는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당황스럽고, 난감합니다. 영화를 다 촬영한 뒤, 1차편집권까지는 감독에게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큰 골격에 합의한 뒤 감독에게 연출 전권을 맡길지, 대사 하나하나까지 투자·제작사와 다 합의해서 찍을지, 정말 한국영화가 어떻게 할 건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촬영 도중 시시콜콜하게 검열한 영화가 다 흥행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감독의 창의성 없이 찍으라는 대로 찍는다면, 감독들이 술 먹고 괴로워하며 작품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죠. 감독은 그냥 주급으로 고용해, 마음에 안 들면 부품처럼 교체하면 되는 겁니다. 감독이 고민할 것이 없어지는 한국영화를 만들 것이냐? 한국영화 미래가 걸린 물음입니다.”
이 감독은 다시 메가폰을 잡아 촬영을 재개하면 좋지만, 그것이 안 될 경우 스태프의 고용과 임금 문제 등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원했다. 이걸 논의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이 “자진하차”의 뜻을 밝힌 것으로 오해를 불렀다고 말했다. 제이케이필름의 길영민 대표는 “이미지 중심으로 촬영됐고, 과장된 캐릭터 등이 문제였다”며 “감독 교체는 확정됐고,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 감독님과 25일 만나 스태프 문제 등도 잘 해결하기로 이야기가 풀렸다”며 “이번 사안은 자본과 제작사가 연출권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합의한 시나리오 대로 찍지 않은 약속 위반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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