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두 신인 여배우, ‘은교’의 김고은과 ‘코리아’의 한예리. 사진 이정아, 김태형 기자
떠오르는 두 신인 여배우|감정을 성형하지 않은 순백의 얼굴
‘평균적 성형미인’과는 다른 새 얼굴들의 등장이다. <은교>(상영 중)를 보면, 싱그럽고 풋풋한 ‘은교’(김고은)를 근거리에서 응시하는 영화 카메라의 시선마저 부럽게 느껴질 것이다. <코리아>(5월3일 개봉)에선 북한 탁구선수 유순복(한예리)의 눈만 마주해도 뭉클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낯선 신인을 다룬 이 기사를 읽지 않고 넘긴 이들도, 두 영화를 본 뒤엔 김고은과 한예리가 궁금해져 이 기사를 찾아 읽고 싶어질지 모른다.
‘은교’의 김고은
300대1 경쟁 뚫고 낙점받아
“매번 한계치 연기하려 노력
내 정서는 아날로그적이죠” “‘은교’ 할 수 있겠니?” 정지우 감독이 물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 내면에 자기중심’이 보였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느닷없는 변화를 앞에 두고, 김고은(21)은 나흘간 망설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생 부회장이었던 그는 동문회 회장(현 소속사 대표)의 권유로 지난해 여름 영화 <은교>의 감독을 만났다. “학생 땐 좀더 배우고, 독립영화에도 출연해 경험을 쌓으려 했다”던 그는 ‘영화감독은 어떤 기운을 가졌을까’, 그런 호기심에 제작진과 마주했다. 마침 한 달 전 원작 소설을 읽은 터였다. 바로 다음날 오디션을 하자고 제안받아, 입시 실기 때 했던 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의 독백과, “내 경험을 은교의 성격처럼” 말하는 독백을 선보였다. 투자사, 제작진이 지켜본 2시간 오디션에서 300 대 1의 ‘1’로 낙점됐다. 제작진과 이틀간의 만남, 나흘간의 고민 등 6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풋풋한 역할로 데뷔”하길 원한 아버지는 20여분 고민하더니, “이 작품이 우리 곁에 어른거리는 걸 보니 네가 할 운명인가보다. (이미지가 아닌) 연기(력)를 고집하는 센 배우가 돼라”고 힘을 줬다. 그땐 은교로 캐스팅될 줄 모르고, “아빠, ‘은교’가 영화로도 만들어진대”라며 딸이 봤다는 소설을 아버지도 읽은 터였다. “은교를 어떻게 표현할까 욕심 나는데,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면 억울할 것 같았죠.” 맑은 김고은의 얼굴은 70살 노인 이적요(박해일)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촉발시키는 은교의 캐릭터와 합치된다는 평이 많다. “소설에서 은교는 이적요의 시선에 포장된 느낌, 타인에게 대상화된 느낌이 컸어요. 시나리오는 능동적이고, 당돌하고, 더 현실적인 아이로 보였죠.” 그는 “외롭고 사랑을 잘 받지 못한 은교가 이적요의 관심과 애정 때문에 그를 따르게 되고,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에겐 호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등을 다룬 영화이지만, 이름 옆에 ‘노출’이란 인터넷 검색어가 같이 뜨는 상황이 부담될 수 있다. 영화를 본 부모님은 “고생했다. 좋은 영화인 것 같다”며 딸을 안아줬다고 한다. “사랑을 갈망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니까, 누가 봐도 어떤 한 부분은 공감할 것 같아요. 영화 보기 전엔 걱정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그때 그때 한계치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4살부터 10년간 아버지 일 때문에 중국에서도 살았다. 성격이 밝은 편이라는 그는 “정서는 아날로그적이예요. 가수 이소라와 넬을 좋아하고, 김광석의 ‘그날들’은 아픈 사랑이 느껴져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규격화되지 않고, 여러 감정을 그릴 수 있는 얼굴 때문인지, 소속사는 “벌써 영화 등 다른 작품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코리아’의 한혜리
북선수로 열연 관객에 감동
“연기는 선입견을 부수는 것
좌우 비대칭 제얼굴 좋아요” 영화 <코리아>의 성취라면, 한예리(28)를 대중 앞에 출현시킨 점이다. 하지원과 배두나를 보러갔다가 한예리를 발견하고 나온다는 평까지 있는 건, 그가 가장 인간적이고 개연성 있는 감정을 가진 인물로 느껴져서일 것이다. 첫 국제대회 출전에서 고전하다가 결승전에서 놀라운 활약을 하는 영화 속 ‘유순복’은 그 모습 그대로 배우 한예리의 도약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순복 선수 사진을 보니 앳되고 착하면서도 강단이 있어 보였어요. 옛 경기를 보니 몸이 떠서 드라이브를 하더라고요. 안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구나 생각했죠. 무엇보다, 영화 안에서 혼자 성장하는 유순복의 드라마가 좋았어요. 결승전 찍을 땐 정말 선수가 된 느낌이었죠.”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잡이 유순복을 연기하느라, 다른 배우보다 2시간 먼저 도착해 탁구훈련을 했다. “라켓을 처음 잡았는데, 손이 작아서 손잡이가 손에 잘 걸리지 않았어요. 매일 거울 보며 수천번 스윙을 했죠.” 근육량을 키워 체중도 4㎏ 늘렸다.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우승 뒤 남북 선수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손거울을 남쪽 선수에게 주고, 꾸벅 숙여 인사하는 유순복의 작은 몸짓들이 관객의 가슴을 흔든다. “다음에 거울 갖고 있는지 확인할 거라고 말하지만 다시 못 볼 걸 아니까, 친구들과 헤어지는 순복이의 마음이 더 슬펐을 거예요.” 영화 제작사 대표는 드라마 <로드넘버원>(2010)에서 북한 간호사 역을 했던 한예리의 사진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봤다고 한다. 독립영화 <푸른 강은 흘러라>(2008)에서 조선족 여성을 연기한 것까지 확인하고, 유순복으로 캐스팅했다. “<로드넘버원> 때는 매니저가 없어 혼자 옷 싸들고 이동해 찍은 첫 드라마라, 가슴이 쿵쾅거려 진정제를 먹기도 했어요.” 생후 28개월부터 사촌언니를 따라 한국무용을 배워,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무용과를 졸업했다. 한예종 2학년 때 영화과에서 찍는 작품의 무용안무를 해준 것을 계기로, 독립영화 10여편에 출연했다. 2008·2010년엔 미장센영화제 연기상도 받았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무용작품에 참여해요. 작년엔 ‘굿, Good(굳)’이란 작품의 주역 무용수로 참가해 서울무용제에서 우수상도 받았죠. 무용이 현실의 세계에서 일탈해 에너지를 내 안에 쌓는 느낌이라면, 연기는 내 안에 쌓인 것, 생각, 선입견 등을 부수는 느낌이죠.” 키가 1m60cm 남짓인 그는 “키도 컴플렉스였고, 대학입시 땐 무용선생님들이 무대에서 입체적인 얼굴로 보이기 위해 성형도 권했다”고 한다. “영화를 본 분이 얼굴에서 한이 느껴졌대요. 얼굴이 평범해서, 오히려 더 평범하지 않게 보일 수 있죠. 밋밋하니까 여러 감정을 얼굴에 넣을 여백도 있고요. 좌우 비대칭의 제 얼굴이 좋아요.” 여리고 단단한 유순복의 비대칭 정서가 그 얼굴에 담겼다. 글 송호진 기자
영화 ‘은교’에서 70살 노인 이적요(박해일)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촉발시키는 은교 역의 김고은. 영화 장면.
300대1 경쟁 뚫고 낙점받아
“매번 한계치 연기하려 노력
내 정서는 아날로그적이죠” “‘은교’ 할 수 있겠니?” 정지우 감독이 물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 내면에 자기중심’이 보였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느닷없는 변화를 앞에 두고, 김고은(21)은 나흘간 망설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생 부회장이었던 그는 동문회 회장(현 소속사 대표)의 권유로 지난해 여름 영화 <은교>의 감독을 만났다. “학생 땐 좀더 배우고, 독립영화에도 출연해 경험을 쌓으려 했다”던 그는 ‘영화감독은 어떤 기운을 가졌을까’, 그런 호기심에 제작진과 마주했다. 마침 한 달 전 원작 소설을 읽은 터였다. 바로 다음날 오디션을 하자고 제안받아, 입시 실기 때 했던 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의 독백과, “내 경험을 은교의 성격처럼” 말하는 독백을 선보였다. 투자사, 제작진이 지켜본 2시간 오디션에서 300 대 1의 ‘1’로 낙점됐다. 제작진과 이틀간의 만남, 나흘간의 고민 등 6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풋풋한 역할로 데뷔”하길 원한 아버지는 20여분 고민하더니, “이 작품이 우리 곁에 어른거리는 걸 보니 네가 할 운명인가보다. (이미지가 아닌) 연기(력)를 고집하는 센 배우가 돼라”고 힘을 줬다. 그땐 은교로 캐스팅될 줄 모르고, “아빠, ‘은교’가 영화로도 만들어진대”라며 딸이 봤다는 소설을 아버지도 읽은 터였다. “은교를 어떻게 표현할까 욕심 나는데,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면 억울할 것 같았죠.” 맑은 김고은의 얼굴은 70살 노인 이적요(박해일)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촉발시키는 은교의 캐릭터와 합치된다는 평이 많다. “소설에서 은교는 이적요의 시선에 포장된 느낌, 타인에게 대상화된 느낌이 컸어요. 시나리오는 능동적이고, 당돌하고, 더 현실적인 아이로 보였죠.” 그는 “외롭고 사랑을 잘 받지 못한 은교가 이적요의 관심과 애정 때문에 그를 따르게 되고,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에겐 호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등을 다룬 영화이지만, 이름 옆에 ‘노출’이란 인터넷 검색어가 같이 뜨는 상황이 부담될 수 있다. 영화를 본 부모님은 “고생했다. 좋은 영화인 것 같다”며 딸을 안아줬다고 한다. “사랑을 갈망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니까, 누가 봐도 어떤 한 부분은 공감할 것 같아요. 영화 보기 전엔 걱정했는데, 지금은 담담해요. 그때 그때 한계치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4살부터 10년간 아버지 일 때문에 중국에서도 살았다. 성격이 밝은 편이라는 그는 “정서는 아날로그적이예요. 가수 이소라와 넬을 좋아하고, 김광석의 ‘그날들’은 아픈 사랑이 느껴져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규격화되지 않고, 여러 감정을 그릴 수 있는 얼굴 때문인지, 소속사는 “벌써 영화 등 다른 작품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원과 배두나를 보러갔다가 한예리를 발견하고 나온다는 평까지 있는 영화 ‘코리아’ 유순복 역의 한예리. 영화 장면.
북선수로 열연 관객에 감동
“연기는 선입견을 부수는 것
좌우 비대칭 제얼굴 좋아요” 영화 <코리아>의 성취라면, 한예리(28)를 대중 앞에 출현시킨 점이다. 하지원과 배두나를 보러갔다가 한예리를 발견하고 나온다는 평까지 있는 건, 그가 가장 인간적이고 개연성 있는 감정을 가진 인물로 느껴져서일 것이다. 첫 국제대회 출전에서 고전하다가 결승전에서 놀라운 활약을 하는 영화 속 ‘유순복’은 그 모습 그대로 배우 한예리의 도약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순복 선수 사진을 보니 앳되고 착하면서도 강단이 있어 보였어요. 옛 경기를 보니 몸이 떠서 드라이브를 하더라고요. 안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구나 생각했죠. 무엇보다, 영화 안에서 혼자 성장하는 유순복의 드라마가 좋았어요. 결승전 찍을 땐 정말 선수가 된 느낌이었죠.”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잡이 유순복을 연기하느라, 다른 배우보다 2시간 먼저 도착해 탁구훈련을 했다. “라켓을 처음 잡았는데, 손이 작아서 손잡이가 손에 잘 걸리지 않았어요. 매일 거울 보며 수천번 스윙을 했죠.” 근육량을 키워 체중도 4㎏ 늘렸다.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우승 뒤 남북 선수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손거울을 남쪽 선수에게 주고, 꾸벅 숙여 인사하는 유순복의 작은 몸짓들이 관객의 가슴을 흔든다. “다음에 거울 갖고 있는지 확인할 거라고 말하지만 다시 못 볼 걸 아니까, 친구들과 헤어지는 순복이의 마음이 더 슬펐을 거예요.” 영화 제작사 대표는 드라마 <로드넘버원>(2010)에서 북한 간호사 역을 했던 한예리의 사진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봤다고 한다. 독립영화 <푸른 강은 흘러라>(2008)에서 조선족 여성을 연기한 것까지 확인하고, 유순복으로 캐스팅했다. “<로드넘버원> 때는 매니저가 없어 혼자 옷 싸들고 이동해 찍은 첫 드라마라, 가슴이 쿵쾅거려 진정제를 먹기도 했어요.” 생후 28개월부터 사촌언니를 따라 한국무용을 배워,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무용과를 졸업했다. 한예종 2학년 때 영화과에서 찍는 작품의 무용안무를 해준 것을 계기로, 독립영화 10여편에 출연했다. 2008·2010년엔 미장센영화제 연기상도 받았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무용작품에 참여해요. 작년엔 ‘굿, Good(굳)’이란 작품의 주역 무용수로 참가해 서울무용제에서 우수상도 받았죠. 무용이 현실의 세계에서 일탈해 에너지를 내 안에 쌓는 느낌이라면, 연기는 내 안에 쌓인 것, 생각, 선입견 등을 부수는 느낌이죠.” 키가 1m60cm 남짓인 그는 “키도 컴플렉스였고, 대학입시 땐 무용선생님들이 무대에서 입체적인 얼굴로 보이기 위해 성형도 권했다”고 한다. “영화를 본 분이 얼굴에서 한이 느껴졌대요. 얼굴이 평범해서, 오히려 더 평범하지 않게 보일 수 있죠. 밋밋하니까 여러 감정을 얼굴에 넣을 여백도 있고요. 좌우 비대칭의 제 얼굴이 좋아요.” 여리고 단단한 유순복의 비대칭 정서가 그 얼굴에 담겼다. 글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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