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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선악이 모호한 시대의 ‘사고뭉치 영웅들’

등록 2012-05-04 19:44

영화 <어벤져스> 가운데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 가운데 한 장면.
[토요판] [TV +] 김성윤의 덕후감
<어벤져스>. 영화 대사 그대로, ‘여태까지는 예고편, 이번 게 본편’이다. 개인적으론 딱 한 장면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뉴욕 복판에서 히어로들이 외계인과 싸우는 카메라 워크에서였다.

카메라는 거리에서 전투중인 캡틴 아메리카, 호크 아이, 블랙 위도, 공중에서 외계인을 쫓는 아이언맨, 빌딩 외벽을 타고 공략중인 헐크, 그리고 옥상에서 화살을 먹여대는 호크 아이를 차례대로 틸트업(카메라를 위쪽으로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기법)한다. 이 한번의 호흡을 통해 ‘사고뭉치들이 비로소 한 팀이 되었구나’, ‘이들의 능력이란 실로 가공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무릇, ‘돈지랄’이란 이렇게 해야 한다.

지난번에 <아이언맨>에 관해 쓴 적이 있는데, 핵심은 이거였다. 히어로 액션물에서 대체적으로 국가는 무능력한 모습으로 나온다. 따라서 (냉전시대에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히어로가 출현하여 적에 대항한다는 유의 시민사회 동원령이 발동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이언맨의 특이한 점은 히어로가 시민사회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도 군수산업으로부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언맨이 우리 시대에 남기는 질문은 ‘시장이 안전유지와 사회보장을 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정도로 요약된다. 그런데 <어벤져스>를 보고 난 뒤 이 질문을 조금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에선 그간 베일에 싸였던 ‘실드’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맙소사! 국가는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시장(토니 스타크)과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나름 (블랙 위도와 호크 아이같이) 일선 활동가도 양성중이었다.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헐크)들의 행적도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오늘날 국가가 무능력하단 말은 취소해야 하겠다.

다만 실드는 그 혼자서 사회의 안전을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국가기관들과 협력을 도모하고 때로는 갈등을 빚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보장 시스템에 시장과 시민사회를 동원한다. 이를테면 제 스스로를 반국가화하면서 일종의 안전보장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시스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국가가 전면에 나선다는 건 왠지 사회주의적으로 여겨지고 어딘지 비효율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기획자 노릇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뭉치겠는가. 그 대신에 일선의 행정 집행은 시장과 시민사회에 위탁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면 된다. 물론 상징적 차원에서는, 안전보장을 수행하는 사회적 주체들의 구심점이 (말 잘 듣는) ‘캡틴 아메리카’로, 세계의 랜드마크가 ‘에이’(A)로 귀결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어벤저들이 주고받는 대화처럼, 지금의 세계는 70년 전의 세계보다 더 어지러워지고 질적으로도 달라진 게 분명하다.

끝으로,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이건 나로서도 불가해한 측면이 있다. 과거의 관객들은 영화의 선악 구도를 통해 현실을 유추하는 게 가능했다. 냉전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뒤에도 아랍, 동유럽, 북한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적이 누군지를 대체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영화를 봤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포털이 열리고 외계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 우리는 이들 형상을 현실에서 어떤 대상에 투사할 수 있을까. 혹시 그 자리엔 아무도 없는 게 아닐까.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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