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진 기자
울림과 스밈
‘잘못된 만남’으로 끝났다.
“비주얼리스트인 이명세 감독의 창작력과 제작사 제이케이필름의 시나리오가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던 제이케이필름의 기대도 허망하게 사라졌다. 총제작비 100억원대 영화 <미스터 케이(K)>는 <해운대> 조감독 출신 이승준 감독으로 연출자를 교체해 한 달 남짓 중단된 촬영을 14일부터 재개한다. 제목도 <협상종결자>로 바뀌었다. 메가폰을 놓게 된 이명세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본인의 아이디어가 들어갔다며 <미스터 케이> 저작권자를 자신으로 슬그머니 등록했고, 제이케이필름은 불법 등록이라며 저작권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촬영 초반부터 감독 교체, 소송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감독이 제3자를 통해 ‘감독 교체’에 대한 위로금 합의안도 제시했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 대처하는 감독의 태도를 판단할 잣대는 되지만 이 사안을 촉발시킨 본질이라 할 순 없다. 이 사태는 감독 교체가 수긍할 만하게 흘러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 95회차 촬영분 중 11회차 촬영에 대한 편집본을 본 제작사는 “비주얼만 집착하다, 이야기를 놓쳐 비난받은 <7광구>보다 더 큰 일을 당하게 생겼다”며 촬영을 중단시켰다. 제작사는 감독을 자를 의도는 전혀 없었고, 작품 방향의 이견을 좁히려는 점검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아쉬운 것은 제작사가 “감독 교체는 없다”고 선을 그어, ‘해고를 위한 촬영 중단’이란 오해를 불식시키고, 감독과 작품 방향에 대한 의견 교환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제이케이필름을 세운 윤제균 감독은 촬영 중단을 스태프에게 알린 지난달 6일에 이 감독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시나리오의 대사들을 살려서 찍어 달라’고 요구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품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 뒤 ‘나는 이 작품을 해야겠으니, 법으로 해결하자’는 이 감독의 반응에 제작사가 격앙됐을 순 있지만, 촬영 중단 불과 사흘 만인 9일과 10일 스태프들에게 “감독이 교체될 것 같은데, 스태프로서 계속할 거냐?”고 물으며 감독 교체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이견을 좁히려는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 감독 교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면, 이를 ‘감독을 교체하려 한다’고 해석하거나, 연출권에 부당하게 제한을 받았다고 느낄 소지도 있는 것이다.
메인투자사 씨제이(CJ)는 감독 교체와 무관한 객체인가? 제작사는 씨제이도 같은 생각이라며 초반 촬영 편집본에 대해 “유치하고 억지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제작사는 “씨제이가 이 영화 프로젝트를 엎으려고 한다”며 이 감독에게 사실상의 하차를 권하기도 했다.
투자사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 감독에게 연출을 안긴 윤제균 감독의 마음고생이 컸을 것이라고 영화인들도 이해한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미스터 케이>는 2시간여 영화 분량 중 6~7분 정도만 촬영하고도 감독이 조기 교체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런 결과가 씨제이와 제이케이필름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더라도, 앞으로 감독들이 투자자본 등이 원하는 방향에 연출을 맞추는 ‘자기 검열’의 가능성을 키운 것은 사실이다.
이 사태가 향후 영화 제작 풍토에 미칠 파장에 대한 영화계의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감독의 연출권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인가, 또 이번 사례를 악용해 투자사가 제작사한테 촬영 초반부터 감독 하차 압박을 가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따위 여러 질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송호진 기자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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