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의 디렉터스 컷]
열세 살 무렵인 것 같다. 그때 문득 ‘나’에 비해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런 생각은 이후로도 계속돼 특히 군대 가기 직전에 최고점을 찍었는데, 당시 나는 이제 곧 ‘군인 아저씨’가 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런 현실적 괴리감 때문인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나’는 ‘군 입대를 하루 앞둔 청년’을 주인공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기까지 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영화가 시작되면 군 입대를 앞둔 한 청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이어지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 여자친구와의 전화 통화 등을 묵묵히 견디던 그는 훈련소로 가게 될 시외버스 안에서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을 군대로 데려다 줄 그 버스에 앉아 얌전히 출발을 기다리던 청년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그가 도착해 있는 곳은 화창한 봄 햇살로 가득한 어느 동물원이다. 그곳의 하늘을 부유하는 스카이리프트 위에 앉아, 먹다 남은 햄버거를 꾸역꾸역 삼키며 봄 소풍 나온 사람들과 우리 안의 동물들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 고요한 하늘 위에서 청년은 손목시계를 통해 지금의 ‘시간’을 확인한다. 그러곤 시계를 조작해 초침을 정지시키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당시 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너, 군대 가기 정말 싫었나보구나’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 호흡과 무관하게, 등을 떠밀며 빠르게 밀려오는 세상의 시간들. 그 벅찬 속도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백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래는 고양이처럼>(17일 개봉)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인 30대 중반의 두 남녀가 등장한다. 4년째 동거중인 제이슨과 소피는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입양하기까지 남은 30일을 자신들의 마지막 자유시간이라 판단하고 그 시간 동안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마치 어른이 되기 직전 누리는 아이들의 짧은 방학 같은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전과 다른 일상을 경험한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충동적인 욕망과 감정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롭기만 할 줄 알았던 그 잉여의 시간들 속에서, 그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자신의 ‘어린 알몸’과 마주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 제이슨은 자신에게 이별의 말을 건네려는 소피를 막기 위해 시간을 멈추게 만들어 버린다. 감당하기 벅찬 두려운 미래를 잠시 유예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정지된 시간을 보며,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시절의 두려움과 이미 민방위 아저씨가 되었는데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에 비해 언제나 크게만 느껴지는 ‘나이’라는 옷. 그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지는 것 같다. 과연 그 격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삶의 근원적인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명쾌한 해답 대신, 깜찍하고도 서늘한 질문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유예된 시간’ 동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을 직시하는 행위.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각자의 어린 알몸과 마주치게 되는 두려운 일이지만, 언제까지 모른 척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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