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그랜 토리노>(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시엔>(OCN) 5월27일(일) 오전 11시30분
<그랜 토리노>(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시엔>(OCN) 5월27일(일) 오전 11시30분
“이씨는 어떻게 이런 영화를 좋아할 수 있어? 뭐가 어째? 백인 노인이 아시아계 소년에게 미국적 삶의 가치를 전파해? 이건 그냥 <포카혼타스>잖아!” 영화를 같이 본 동료가 울부짖었다. 양평동 이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 영화를 너랑 볼 생각을 한 내가 죽일 놈이지. 이씨의 평온한 주말은 <그랜 토리노>(사진)와 잘못 초대한 동료의 조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국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는 고집불통 인종주의자 욕쟁이 노인 월트로 나오는 <그랜 토리노>는 분명 쉽게 추천할 영화는 아니다. 허물어져 가는 디트로이트 교외에서 외롭게 늙어가며 틈만 나면 아시아계 이웃들에게 으르렁대는 월트부터 매력적인 주인공은 아닌데다가, 그런 양반이 옆집 아시아계 소년에게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면서 죄의식을 씻고 속죄의 길을 찾는다는 줄거리까지 더하면, 뭐 말 다 했지.
디브이디(DVD) 플레이어에서 디스크를 꺼내며, 이씨는 동료에게 뭐라고 설명했어야 좋았을지 고민했다. “착한 백인의 안위를 위해 나쁜 아시아인을 처단하는 게 아니야. 아시아계 소년을 위해 제 생명을 바치는 백인의 이야기야!”라고 했어야 했을까. 아니지. 그거야말로 ‘나쁜 인디언으로부터 좋은 인디언을 지키는 선한 백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수정주의 서부극 영웅 서사 아닌가.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로선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이란 점을 강조했다면 어떨까. 씨알도 안 먹혔겠지. 분명 ‘그 영감은 보수주의 공화당원’이네 어쩌네 하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창밖엔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다음 날 동료를 만날 생각을 하니 이씨는 머리가 다 아팠다.
자리에 누워서야, 뭐라고 설명했어야 좋았을지 생각이 났다. 평생 한국전의 악몽을 제 안에 꾹꾹 눌러 담고 살아온 월트가, 겁에 질린 소년병들에게 명령받은 적 없는 살육을 자행했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죗값을 갚기 위해 제 나름의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이 좋았다고. 이씨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해야 했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도 제 죄를 고백하지도, 그 죗값을 치를 방법을 찾지도 않는 세상이니까. 죽은 이도 있고 손에 피를 묻힌 자도 있는데 ‘그것이 나의 죄요’라 말하는 이는 없는 부정한 세상에서, 속죄를 구하는 이가 있다면 그게 보수주의자 꼰대든 누구든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씨는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풀밭에 누워 눈을 감은 월트의 모습을. 5월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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