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다른 나라에서>의 한 장면.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만 해도 그렇다. 예술영화라는 타이틀에 눌려 어떤 의미들을 캐내려고 고심하곤 했는데, <생활의 발견> 이후부터는 별생각 없이 그의 영화를 대하고 있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가 웃음소리 뺀 시트콤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시트콤을 보면 중간에 녹음된 방청객 웃음소리가 시청자 대신에 웃어주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김병욱류의 시트콤에서 웃음소리를 빼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홍상수 영화와 흡사하지 않을까. 물론 그의 영화에선 섹슈얼리티가 주된 동력이긴 하지만, 지지리 궁상들이 펼치는 희극적 상황들은 시트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개봉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우리가 김병욱의 시트콤을 볼 때마다 어떤 유머감각을 재확인하는 것처럼, 홍상수 영화도 적잖은 변주와 수수께끼를 거치긴 하지만 관객에게는 기본적으로 쉽게 변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한다. 전문가 집단의 찌질한 속내,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 우발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들.
어떤 사람은 영화 내내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주인공 안느(이자벨 위페르)가 등대로 가기 위해 갈림길에 서 있는 뒷모습을 꼽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앞의 에피소드에서 숨겨놨던 우산을 뒤의 에피소드에서 빼내는 장면에서 뭔가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집필중인 시나리오를 액자식으로 영화화한 이야기 구조에서 의미를 찾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비밀과 상징성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내 능력 바깥의 일이기도 하고.
나는 딱 한 장면, 안전요원(유준상)의 수영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남편과의 이혼 등으로 정서적으로 약해진 안느가 소주 한병을 ‘원샷’하고 마치 빠져 죽을 것처럼 바다를 응시한다. 그러곤 가방에서 꺼내는 두번째 소주병. 죽음이 유예되는 순간, 객석에선 깨알 같은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바다를 바라보는 안느의 뒷모습은 점점 비장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면 오른쪽 상단에서 안전요원이 헤엄을 치면서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른다. 그리고 화면 왼쪽 상단에서 수영을 멈추고 안느를 향해 뛰어온다. “아이고 추워, 아이고 추워” 하면서.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다. 안전요원은 우에서 좌로 직선이동했다가 적정 지점에서 카메라를 향해 돌진해 들어온다. 그 와중에 안느는 묵묵히 바다만 본 채 정지해 있고, 카메라 역시 안느의 보폭을 따라 정지해 있다. 덜덜 떨면서 점차 증강해오는 안전요원의 형상이 곁에 다다를 때쯤, 안느는 비로소 몸을 틀어 안전요원과 마주한다.
어쩌면 홍상수식 농담은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멀쩡할 상황조차 소주를 매개로 비틀어버리는 상황적 농담에 더하여, 카메라와 선 그리고 형상의 움직임 등을 활용한 영상적 농담. 나는 이 장면이 최근 홍상수 영화를 볼 때의 주된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면에는 홍상수 영화가 그동안 보여줬던 내러티브들이 압축적으로 녹아들어 있지 않은가. 여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남자, 그리고 그 모든 배후에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소망의 체계적 좌절 등등.
명장면 추천과 더불어, 하나의 사족으로 덕후감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사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칸에서 윤여정의 러브신이 화제를 모았다는 인터넷 포털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제목만 봤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윤여정이 나오고 그녀에 필적할 만한 파트너로 카메오 김용옥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이쿠 싶었다. 두 사람이 일내는 건가. 그런데 윤여정의 러브신은 <돈의 맛>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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