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날플뤼상 받은 신수원 감독
만삭 아내 둔 지하철 실직남성
서글픈 현실 비춘 ‘순환선’ 수상
만삭 아내 둔 지하철 실직남성
서글픈 현실 비춘 ‘순환선’ 수상
뽑힐까 싶어 망설이다, 65회 프랑스 칸국제영화제(5월16~27일) 지원신청도 마감일에 냈다. 비평가주간 중단편 부문에 덜컥 초대된 그는 “칸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평가주간 시상식이 24일에 있는 줄 모르고, 티켓도 24일 귀국으로 미리 끊었다. 영화제 관계자가 시상식 이틀 전, “귀국을 하루 늦출 수 없느냐”고 물었다. “왜죠?”라고 되물었고, 그제야 자신이 비평가주간 단편 본상인 ‘카날플뤼상’을 받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해 깜짝 놀랐죠.”
최근 폐막한 칸영화제에서 수상소식을 전해온 이는 ‘두 상수 감독’(홍상수·임상수)이 아니라, 40대 여성 영화감독 신수원(45)씨였다.
수상작인 25분여짜리 단편 <순환선>(서클 라인)은 중년 남성이 만삭 아내에게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서울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을 타고 일상을 보내는 얘기다. 판타지 장면을 섞어 넣은 영화는 씁쓸하면서도 서글픈 사회를 비춘다. 4명의 감독이 참여한 장편 옴니버스 중 한 단편인 <순환선>은 국내 개봉기회도 갖지 못한 채 칸에서 먼저 수상하게 됐다.
5일 서울 잠원동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신 감독은 “지하철 촬영 허락 받기도 쉽지 않고, 승객 통제도 잘 안 되는 ‘지하철 로케이션’ 시나리오를 내가 왜 써서 고생하나란 생각도 많이 했다”며 웃었다. 그는 “취객이 카메라 앞으로 와서 ‘왜 난 안 찍어주냐’고 항의한 일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7년 전, 지하철이 와도 타지 않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한 남성을 보고 구상한 시나리오를 묻어뒀다가 제작비 5000만원을 들여 뒤늦게 연출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9일부터 자신의 첫 장편영화 <레인보우>에 이은 두 번째 장편 <명왕성>의 첫 촬영에 들어갔다. 명문고 아이들의 입시경쟁을 다룬 영화다. 이다윗·성준·김꽃비 등이 명문고 학생으로 나오고, 조성하가 경찰서 반장으로 출연한다.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과 입시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비슷하게 느껴져” 제목도 <명왕성>으로 지었다. “예상 제작비는 4억여원인데 아직 절반 남짓밖에 투자받지 못했다”고 한다.
<명왕성> 시나리오에는 중학교에서 10년간 사회 과목을 가르친 그의 교사 체험이 녹아 있다. “교사생활도 재밌었지만 글을 쓰고 싶어” 휴직계를 낸 그는 시나리오 공부를 위해 33살인 2000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2년 과정에 입학했다. 한예종 재학 중 자신의 첫 단편 연출작 시사회에서 “가슴 벅차고, 새로운 걸 만드는 기쁨”이 밀려들어, 졸업과 함께 교사 사직서를 냈다. “작품으로선 좀 엉성했다”던 첫 단편 <사탕보다 달콤한>이 12년째 영화의 길을 걷게 한 ‘달콤한 힘’이 된 셈이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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