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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할머니역 40년 끝에 첫 주연 한 푸네요”

등록 2012-06-10 20:07수정 2012-06-11 17:10

배우 김진구(67)씨는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에서 연기인생 40년여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지난 7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그는  “40년 남짓 할머니 역만 계속 하니, 기적 같은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탤런트 여자 동기 중엔 나만 활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배우 김진구(67)씨는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에서 연기인생 40년여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지난 7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그는 “40년 남짓 할머니 역만 계속 하니, 기적 같은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탤런트 여자 동기 중엔 나만 활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할머니는 일학년’ 주연 김진구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
죽은 아들의 편지 읽으려
까막눈 깨치며 상처 치유
“‘마더’ 본 감독이 날 찍어
기회 되면 악역도 한번”

극중 이름도 거의 없었다.

‘앞집 할머니, 뒷집 할머니, 산파 할머니, 꼬부랑 할멈, 누구네 엄마, 누구댁’으로 출연하는 식이었다. “처녀 땐 매니큐어도 바르고, 폼 잡는 역도 하고 싶었다”지만, 하물며 27살이던 1972년 드라마 <한중록>에선 90대 할머니로 나왔다. “드라마·영화에서 나이 50대 밑의 배역을 맡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몸이 조그맣고, 20대 시절 할머니 역을 맡아 대본을 잘 읽었더니 ‘너 잘한다’며 할머니만 시킨 거죠. 돌아가신 전예출 분장선생님이 ‘넌 주름도 넣고 할머니 분장하기 딱 좋은 얼굴’이라고 하셨죠.”

이어서 이 대목을 말할 땐, 순간 표정이 들뜨기까지 했다.

“40년 남짓 할머니 역만 계속 하니, 기적 같은 기회가 왔네요. 한을 풀었죠.”

배우 김진구씨는 상영중인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감독 진광교)에서 67살이란 느지막한 나이에 드라마·영화를 통틀어 생애 첫 주연을 맡았다. 최근 서울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같이 본 아들이 “우리 엄마 이렇게 연기 잘하시는 줄 몰랐네”라고 했던 말을, 그는 고맙게 기억했다.

“단역으로만 나오고, 기껏해야 조연 몇번 했으니, 그간 엄마가 많이 나오는 연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요.”

영화는 남편과 사별한 ‘까막눈’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이 그동안 보내온 편지를 죽기 전에 읽겠다며 초등학교에 입학해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좌충우돌 한글정복기 영화가 아니다. 한글을 깨친 할머니가 아들이 남긴 수첩을 읽으며 상처를 치유해가고, 아들이 맡아 키우게 된 7살 고아 ‘동이’를 손녀 삼아 남은 삶의 희망을 보는 뭉클한 영화다. 그는 아들을 보낸 슬픔과 ‘설탕’ ‘샴푸’를 더듬더듬 읽게 된 기쁨, 기구한 삶을 살아온 한의 정서들을 얼굴 주름 사이에 그득 담아낸다. 이 배우가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이라도 그의 연기를 2시간 가까이 온전히 보게 된 것은 관객으로선 행운이다. 순제작비 1억원의 저예산 영화인 탓에, 상영관이 극히 적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 7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얼마나 박복한 팔자예요. 내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있는 할머니죠. 극중에서 아들 편지들을 뜯었는데, 사진만 나오잖아요. ‘애미가 까막눈인 거 알았드나’라고 할 땐…”이란 말을 하면서, “또 눈물이 나네” 하고 눈가를 손으로 찍었다.

그는 서울 명성여고 2학년 학급 문예부장 시절, 극작가 유치진이 운영하는 ‘드라마센터’에서 주최한 전국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여고부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홍익대 응용미술과로 진학했다가, 3학년 올라갈 때 장학금이 중단되고 그해 부친이 고혈압으로 돌아가면서 장학금을 주는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대)로 입학했다. 주현·백윤식 등과 1971년 <한국방송>(KBS) 탤런트 9기로 들어갔지만, 20대부터 할머니 전문배우가 됐다. 85년 연극 <풍금소리>로 동아연극상 연기상도 받았으나, 드라마·영화에선 단역에 머물렀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의 엄마, <마더>에선 치매 할머니 등으로 나왔는데, “감독이 <마더>를 보고 ‘저 사람이다’라고 날 찍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연기는 잘하는데 왜 못 뜨니?’란 말을 들으면, ‘연기는 잘하는데’란 말을 위안 삼았죠. ‘뻔데기 장수’여도 다 인생이 있고, 그 삶에 들어가 나를 변화시키며 연기하는 게 행복했어요. 주인공만 연기자가 아니잖아요. 단역과 주인공이 앙상블을 이뤄야 하는 거죠.”

조급해하는 후배 배우들에겐 이런 말도 건넸다.

“먼저 풍부한 집중력·관찰력·상상력·건강·교양을 갖춰야 해요. 그러곤 누구를 흉내내는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나다운 연기를 해야죠. 어떤 역이라도 해낼 수 있게 준비된 연기자가 돼야 합니다.”

“기회가 되면 악역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그는 헤어질 무렵, “예술은 지루해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나를 봐요”라며 웃었다. 빨간 루주를 입술에 바른 그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간다며, 기자에게 손을 여러차례 흔들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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