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의 한 장면.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요즘 <공각기동대> 티브이(TV)판(2002~2004)을 보는 중인데, 덕분에 1995년도의 극장판을 재해석할 만한 여지가 생겨 살짝 흥분하고 있는 중이다. 티브이판 1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온갖 네트워크가 시각을 휘저어 빛과 전자가 된 의사(意思)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더라도, 외로운 인간이 복합체로서의 개체가 될 정도로는 정보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 서기 2030년.” 이러한 내용은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공각기동대>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티브이판 역시 주체의 문제, 즉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5년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은 다소 다른 내용의 자막으로 시작한다. “기업 네트워크가 행성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휘젓고 다녀도, 국가와 민족이 사라져 없어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지 않은 가까운 미래.” 뭔가 맥락이 다른 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 오늘 덕후감의 주제는 <공각기동대>의 재해석이다.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이 극장판 <공각기동대>를 두고 주로 철학적 질문에 집중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가 바트에게 던지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나처럼 완전한 사이보그라면 누구든 생각할 거야. 어쩌면 자신은 아주 옛날에 죽었고 지금의 난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짜 인격이 아닐까 하고. ‘나’란 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 주변 상황을 보고 ‘나’다운 게 있다고 판단하는 것뿐. … 무슨 근거로 자신을 믿지?” 이런 맥락에서 <공각기동대>는 종종 <블레이드 러너>(1982)나 <인셉션>(2010) 등과 함께 존재론적 회의에 관한 대중예술작품의 계보에 포함되곤 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도입부가 사실은 기업, 지구(행성), 정보화, 국가, 민족 등의 주제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건 다소 의아하다. 이런 언어들은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개인적 차원에서 경험하는 세계가 아니라, 좀더 역사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세계를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쿠사나기가 자기동일성(자아정체성)에 심각한 회의를 보였던 것에 대해서도 역사의식이라는 것을 대입하여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극장판이 던졌던 질문은 인간-사이보그-네트워크의 상징놀이 차원이 아니라, 세계화-개발도상국-주식시장-정치공작-테러 등에 대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쿠사나기의 고민은 사이보그로서의 운명적 번뇌를 넘어선다. 그보다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아이러니들을 제 몸으로 응축하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인 듯싶다.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퇴행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자본, 개도국의 군사정권과 민주정권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 법적 절차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는 외설적인 공적 기관(즉, ‘공각기동대’ 공안9과), 질서 유지를 위해선 사적 기업의 도움이 필수적인 치안 체계 등등.
여기서 (주인공 쿠사나기뿐만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로 ‘나’는 누구인가. <공각기동대>는 1990년대 이후의 세계가 더이상은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님을 폭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의 불확실성과 전망의 불투명성이 어디서 기원하는지도 비교적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동일성이란 갈수록 모호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공각기동대>는 당분간 우리들이 존재론적 불안을 초래하는 역사의 전개 양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탈출 방법은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도입부에서처럼 모든 걸 벗어버리고 스스로를 표백하거나, 아니면 말미에서처럼 새로운 괴물로 부활하거나.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인기기사>
■ 아내가 납치됐다, 주사를 맞았다, 아이가 죽었다
■ 멍멍~ 저는 평생 피 뽑히는 강아지입니다
■ 문재인 딸, 대선출정식 불참 “그건 아버지가 하는 일”
■ 전두환 골프치러 갈 때도 무장경찰 경호 받았다
■ ‘아빠 캐디’ 딸 눈치에 숨어서 담배만 뻑뻑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 아내가 납치됐다, 주사를 맞았다, 아이가 죽었다
■ 멍멍~ 저는 평생 피 뽑히는 강아지입니다
■ 문재인 딸, 대선출정식 불참 “그건 아버지가 하는 일”
■ 전두환 골프치러 갈 때도 무장경찰 경호 받았다
■ ‘아빠 캐디’ 딸 눈치에 숨어서 담배만 뻑뻑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