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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파이더맨, ‘88만원 세대’의 친절한 이웃

등록 2012-06-22 19:34수정 2012-07-27 19:44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스파이더맨> 1~3편(샘 레이미 감독, 2002, 2004, 2007)
<채널 씨지브이>(ch CGV), 6월24일(일) 오후 2시~10시 반 연속방영

‘세월 참 빠르구나’, 극장에 걸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포스터를 보며 양평동 이씨는 생각했다. 샘 레이미 감독과 토비 매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첫 개봉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샘 레이미의 3부작이 한 사이클을 끝내고 마크 웹 감독과 앤드루 가필드를 내세운 새 시리즈가 시작되다니. 얼얼한 기분에 손꼽아 헤아려보니, <스파이더맨>이 개봉한 것도 벌써 10년 전이다.

그사이 박지성도 축구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만큼 긴 시간이 흘렀으니, 새 시리즈가 시작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어메이징…>의 예고편은 제법 근사하게 나왔고,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도 화면 안에서 반짝거리는 게 어디 흠잡을 구석은 없어 보였지만, 이씨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마치 10년 만에 만난 고교 동창이 전신 성형에 개명까지 완료한 모습을 본 기분이랄까.

이씨가 샘 레이미 판 <스파이더맨>에 남다른 애정을 품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10대의 끝과 20대의 초입을 지나던 2002년, 이씨는 빌딩 숲을 활강하는 스파이더맨에 매료된 것이 아니라, 잘나가는 또래 아이들 등쌀을 피해 볕도 안 드는 구석으로 다니던 안경잡이 왕따 고등학생 피터 파커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거미에게 물려 힘을 얻은 피터가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학생들과 ‘한판 붙는’ 장면을 보며 이씨는 생각했다. 그래, 이건 나를 위한 영화였어.

게다가 기껏 힘을 얻은 뒤에도 현실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것도 언제나 이씨의 가슴을 울렸다. 집세는 밀렸지, 프리랜서 사진기자 일은 워낙 박봉이라 남는 것도 없지, 데이트할 돈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주제에 ‘당신의 친절한 이웃’을 자처하며 뉴욕의 안위까지 살펴야 하는 불쌍한 피터에게 이씨는 모종의 동료의식까지 느꼈던 것이다. 그래, 너도 힘들지. 나도 20대만 되면 인생이 마음대로 될 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지는 것도 없더라.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씨는 피터 파커를 연기한 토비 매과이어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소처럼 큰 눈망울을 순박하게 껌뻑거릴 때, 그 어딘가 피곤하고 억울해 보이는 눈빛은 영락없는 피터 파커였다. 왕따 소년이었고, 박봉의 사진 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피곤한 청춘이었으며,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에 늦어 거미줄을 치며 빌딩숲을 날아다니는 자괴감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우울한 20대의 얼굴.

그렇게 피곤한 삶을 버텨내는 스파이더맨이 있었기에, 이씨의 20대도 조금은 덜 외로웠다. 극장 앞을 화려하게 도배한 신작 포스터들 앞에서, 이씨는 조용히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나의 친절한 이웃. 덕분에 무사히 20대를 통과했어.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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