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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배 청어람 대표 “MB집권 뒤 영화 ‘26년’ 엎어졌지만…”

등록 2012-06-24 14:36수정 2012-06-24 20:39

최용배 대표
최용배 대표
“강호 닮은 세상 향한 복수극…이 영화, 더는 주저앉지 않아”
4년전 무산 딛고 새달 촬영 시작
5.18 유족의 학살자 습격이 뼈대
한혜진·진구·변희봉·임슬옹 출연
“사적응징 내모는 사회는 비정상, 여권 재집권 고려해 대선전 개봉”
 그는 “외압이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2008년 9월. 한 벤처투자사와 투자조합을 꾸려 10억원 투자를 약속한 대기업 쪽의 상무가 “내가 잘릴 수 있어요. 제발 봐주세요”라며 투자를 돌연 철회했다. 촬영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 윗선에서 투자하지 못하게 전화를 걸었다”는 둥 뒷말이 무성했다. 이 대기업이 물러서자, 미리 지급 받은 다른 투자자의 20억원과 곧 들어오려 했던 10억원 투자금도 철수했다.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씨한테서 2006년 영화 판권을 구입할 때, 주변에선 “정권이 바뀌면 혹시 제작이 무산될 수 있으니 2007년 대선 전에 개봉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영화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49) 대표는 “설마 이상한 일이 생기겠냐 했는데, 문화적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투자자가 눈치 보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고 떠올렸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구나 느꼈죠.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주저앉을 수 없었죠.”

 최 대표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젊은이들이 시민을 학살한 최고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을 습격하는 내용의 <26년>(감독 조근현) 영화화에 6년째 매달렸다. 그는 관객 1300만명을 모은 <괴물>(감독 봉준호·2006년) 제작자이기도 하다. <26년>의 순제작비 46억원 중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20여억원을 약속받아, 새달 10일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지난 3월 ‘10억원 온라인 펀딩’을 시도했으나 목표액을 채우지 못해 무산된 뒤, 여러 시민들이 영화화에 동참하고 싶다며 개별적으로 투자를 해왔다고 한다. 가수 이승환씨도 투자에 참여했다.

 어머니를 잃고 전직 대통령 저격을 노리는 사격선수 ‘심미진’역은 한혜진이, 계엄군에 의해 아버지를 여읜 뒤 함께 습격에 나서는 건달 ‘곽진배’역은 진구가 맡는다. 전직 대통령 역에 변희봉, 젊은 경찰관 역에 아이돌 가수 임슬옹이 캐스팅됐다.

 “5·18 당시 희생된 가족들은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잖아요. 시민군의 자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을 죽인 범죄자와 그 주변인들은 권력을 유지하면서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잖아요. 공권력의 비호까지 받으면서. 우리 사회가 화해와 용서를 얘기하는데, (범죄) 당사자는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습니다.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직접 단죄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의 내용을 통해,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제기를 하려는 겁니다.”

 그는 “5·18 기념식에 대통령이 불참하고, 기념사도 보내지 않게 됐다. 민주화를 진전시키고, 우리 사회를 이만큼 오게 했던 역사적 과정과 가치를 망각하지 않도록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 영화를 대중성을 갖춘 ‘무협액션 복수극’ 장르로 칭하는 이유도 있다.

 “무협극을 보면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으나, 마을의 (권력자인) 현감 등이 (죽인 사람과) 같은 편이 돼 벌을 주지 않으면, 그 자녀가 힘을 키워 사적인 복수에 나서잖아요. 그건 또 다른 사적인 복수를 낳는 악순환이 됩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개인적인 복수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죠. 이 영화는 마치 우리 사회가 무법천지의 강호의 세계와 매한가지라는 부끄러운 점도 보여줍니다.”

 민감한 내용 탓에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그는 “어떤 배우는 ‘내용이 세서 무섭다’며 못하겠다고 했고, 몇몇 배우는 본인은 하고 싶은데 소속사와 가족이 말린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한 대형 매니지먼트사는 (소속 배우들의 출연제안을 거절하면서) ‘예. 저희가 비겁해요. 이해해 주세요. 저희가 상장사이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혜진은 생각이 깊고 심지가 굳다는 신뢰감을 주고, 자연미의 외모도 가졌잖아요. 방송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나오는 한혜진이 5·18 아픔을 치유하자는 의미도 있는 <26년>에 출연하면서 영화가 더 건강하게 보이게 됐어요. 최근 배우 상견례 자리에서 혜진씨가 ‘난 (작품이) 좋아서 하는 건데, 내 출연결정을 놓고 왜 결단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2008년 당시 다른 배역(계엄군 출신으로 대기업 회장이 된 ‘김갑세’의 아들인 27살 김주안 역)이었던 ‘진구’는 영화가 무산된 뒤에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기다려줬어요. 그사이 나이도 더 먹어 (극중 주인공인 32살)‘곽진배’ 역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거죠. 정말 고마운 배우들입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최고 책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실존 인물에게 살해위협을 가하는 내용을 두고, 전직 대통령 쪽에서‘인격권 침해’라며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픽션(허구) 영화다. 개봉하는 데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란 법적 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 생도들에게 사열을 받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때 경찰의 경호를 받았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이 영화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영화를 보시는 분들마다 (내용의 수위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왜 이런 얘기는 안 다뤘느냐’는 등의 반응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도 있어 부담도 있다”고 했다.

 그는 <26년> 공식 사이트(www.26years.co.kr)를 25일 개설해 아직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제작비의 온라인 후원을 받을 계획이다. 영화는 ‘12월 대선’ 전인 11월 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사정권의 비인도적 폭력성을 겨누고, 국가 역할을 묻는 이 영화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어떤 정치·사회적 파장을 낳을지도 관심사다.

 그는 ‘대선 전 개봉’에 대해 혹여 여권이 재집권할 경우, 개봉하지 못할 것에 대비한 “안전책”이라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정치적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씁쓸함과,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싶은 그의 절실함이 뒤엉켜 스쳐갔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림 청어람 제공
강풀 원작 만화 ‘26년’
강풀 원작 만화 ‘26년’

강풀 원작 만화 ‘26년’
강풀 원작 만화 ‘26년’

 ■ 화보 : 국가기록원, 6.25 희귀 기록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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